현대사태를 둘러싸고 벌어지고 있는 정부와 현대의 한심한 줄다리기, 그리고 현대 상층부의 안하무인격 태도를 보면서 국민들은 도대체 이 나라에 정부가 있는지 법과 규정은 제대로 서 있는지, 저것이 바로 한국 최고재벌의 행태인지 의심하게 된다. 수조원의 금융자금과 구제금융을 지원하면서도 부실경영에 대한 문책은커녕 채권확보를 위한 채권자로서의 당연한 권리조차 행사하지 못한 채 미적거리며 채무자 눈치나 보고 있는 정부와 채권단의 우유부단한 자세는 실망을 넘어 국민의 분노를 사기에 족하다. 도대체 정부나 채권단은 현대그룹에 대해 무슨 큰 약점을 잡혔길래 현대한테 그토록 질질 끌려가고 있는지 궁금하기 짝이 없다는 것이 현대사태를 보는 많은 국민들의 시각이다.

그룹의 주력기업이 부실화되었다면 당연히 그룹차원에서 먼저 정상화를 위한 고통스러운 자구노력을 기울이고 나서 구제지원을 요청하는 것이 일의 순서이자 도리다. 그런데도 현대는 정부의 거듭되는 자구계획 보강 요구에도 불구하고 이런저런 핑계로 시간만 끌며 버티기로 일관하고 있는 인상이다. 시장과 금융계가 신뢰하고 수용할 만한 획기적인 자구노력은 제시하지 않은 채 현실성 없거나 알맹이 없는 부실한 자구계획만 반복할 경우 결국은 정부도 현대도 함께 시장의 신뢰를 잃게 되고 그 결과는 가공할 악순환의 상승작용으로 되돌아올 것이다.

현대는 더 이상 국민경제를 볼모로 한 위험한 도박을 중지해야 하며 정부는 더 이상 종이호랑이 같은 우유부단에서 탈피해야 한다. 툭하면 총수가 병원에 입원하고 세가 불리하면 ‘회장’이 해외로 자리를 피하고 심심하면 형제간 재산 싸움벌이고 전문경영인들조차 ‘내 배 째라’는 식으로 버티고 있는 모습에 국민들도 이제는 신물을 내고 있다. 그 중 가장 중요한 책임이 있는 한 사람은 그 마당에 오늘 일본서 오자마자 내일 북한에 간다니 정말 사람 약올리기 딱 알맞다.

정부는 이 나라에 법과 규범이 있음을 국민 앞에 실증해야 할 책임이 있다. 채무자는 상응하는 책임과 의무를 성실히 지켜야 하며 법에 안 맞는 기업결합이나 선단경영은 계열분리로 해소돼야 한다. 부실에 책임있는 자는 오너든 전문경영인이든 누구든 응분의 경영책임을 져야 한다. 나라가 온통 현대에 목매여 끌려가서는 절대 안 될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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