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인들이 한국전쟁을 흔히 ‘잊혀진 전쟁’이라고 부른다지만 실은 그렇지 않은 것 같다. 최근 몇 년간 미국에서는 한국전쟁에 관한 책이 수십권이나 출간됐다. 트루먼 대통령과 맥아더 장군의 전략 등을 다룬 학술서적도 있지만 아무래도 참전용사들이 쓴 책이 가장 돋보인다. 젊은 나이에 사선(사선)을 수없이 넘은 참전용사들이 인생의 황혼기에 쓴 책들은 반응도 좋은 편이다. ▶해병대 소대장으로 참전한 제임스 브래디가 쓴 ‘추운 전쟁’과 육군 소대장으로 참전한 애디슨 테리가 쓴 ‘부산 구출작전’ 등이 그런 책들이다. 브래디는 참전 해병장교를 주인공으로 한 ‘가을의 해병’이란 소설도 출판했다. 해병 소총수로 참전한 마틴 러스가 쓴 ‘포위망 탈출’은 혹독한 추위 속에서 6만여명의 중공군에 포위돼서 미군이 엄청난 희생을 치른 장진호 전투에 관한 기록이다. ▶‘포위망 탈출’은 당시 미 해병이 겪은 참혹한 전투를 사실처럼 그려냈을 뿐더러 미군의 큰 희생이 지휘부의 과오와 육군의 무능 때문이라고 주장해서 파문을 일으켰다. 역시 해병대 사병으로 장진호에서 싸웠던 조셉 오웬은 ‘지옥보다 더한 추위’라는 참전 수기를 펴냈다. 브래디의 ‘가을의 해병’도 장진호 전투를 무대로 한 것이니 그 전투가 얼마나 치열했던 것인지 짐작할 수 있다. ▶이들 책이 소개된 아마존 사이트에는 독후감이 많이 올라와 있는데 개중에는 가슴을 뭉클하게 하는 것이 많다. 역시 참전용사인 한 독자는 자신이 다시 전투를 치르는 것 같았다면서 전쟁 기록은 실전에 참가했던 사람이 가장 잘 남기는 것이라고 했다. 장진호 전투에 참가했던 아버지로부터 그에 관한 이야기를 들었다는 한 독자는 책을 다 읽고 눈물을 흘렸다고 술회했다. 또 다른 독자는 스필버그가 장진호 전투를 주제로 해서 ‘라이언 일병 구하기’ 같은 영화를 만들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러고 보니 한국전쟁은 정작 우리나라에서 ‘잊혀진 전쟁’이 된꼴이다. 북한을 자극한다고 해서 6·25 발발 50주년 행사도 제대로 치르지 못했다. 6·25 참전 수기라도 썼다가는 공연히 냉전 분위기를 조성한다는 빈축이나 살 판이다. 아니 그런 책을 찍어 줄 출판사도 없을 것 같다. 혹자는 굳이 6·25 남침을 내세우지 않는 것은 남북의 화해와 협력을 위해서라고 강변한다. 그러니 북은 회담 하나로 ‘6·25 남침’을 잠재우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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