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에서 최근 북한의 위협을 빌미로 군사력을 강화하고 그 사용 범위를 확대하는 방향의 개헌 움직임이 추진력을 얻고 있는 것은 매우 경계해야 할 일이다.

일본 자민당 내의 보수적 단체인 헌법조사회가 일본의 군사력 보유를 명기하고 총리가 비상사태를 발동해 군대를 동원할 수 있도록 하는 내용의 개헌 골격을 마련했다는 일본 마이니치 신문의 보도는 일본 내에서 개헌을 이미 기정사실화해 가는 여러 흐름 중의 하나를 보여준 사례일 뿐이다.

일본 국회는 2000년 초당적인 헌법조사회를 구성했고 2005년에 개헌 관련 보고서를 낼 예정이다.

‘평화 3원칙’을 규정한 헌법 제9조의 수정을 핵심으로 하는 일본의 개헌론은 국제정치 환경의 변화와 국내의 이념적 풍향에 따라 부침을 거듭해 온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걱정스러운 것은 최근의 심상치 않은 기류에는 북한의 위협이 결정적 계기로 작용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일본인 납치 사건의 실상을 확인한 일본인들에게 북한정권은 그야말로 ‘악(惡)의 축’으로 간주되고 있다.

그런 북한이 핵과 미사일로 공격할 경우에도 일본은 손발이 묶여 있어야 하느냐는 개헌파의 공세가 국내 여론을 개헌 쪽으로 움직여 가고 있으며, 국제적으로도 북한 핵은 핵을 포함한 일본 재무장을 원천적으로 금기(禁忌)시해 온 그간의 시각에 미묘한 변화를 불러오고 있는 실정이다.

입만 열면 일본 ‘제국주의’를 비난하고 경계하는 북한이 무모한 핵(核)도박으로 일본의 재무장을 재촉하는 어리석음을 범하고 있는 것은 비극적 아이러니다.

한국정부 역시 한반도와 동북아 평화체제 유지를 위한 새로운 전략적 비전을 갖추지 못한 채 섣불리 한·미 동맹관계의 이완(弛緩)을 초래함으로써 결과적으로 동북아 정세 전반의 유동성(流動性)을 증가시켜 일본으로 하여금 평화헌법 포기 유혹을 부추긴 측면이 없지는 않은지 살펴보아야 한다.
저작권자 © 조선일보 동북아연구소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