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평양에 도착해서 지난번 김대중 대통령처럼 평양 시민들로부터 열광적인 환영을 받았다. 푸틴이 탄 비행기는 평양 상공에 형성된 이상기류 때문에 예정시간보다 30분 정도 늦게 순안 비행장에 도착했다고 한다.

평양 상공뿐만 아니라 북한과 러시아 관계에 이상기류가 형성되고 있는 것인가? 왜 갑자기 북한과 러시아가 긴밀한 우호관계를 과시하게 되었을까?

북한과 러시아 지도자들이 합의한 공동성명의 내용들은 결국 남북한의 자주적인 통일을 지지한다는 정치적인 것과, 미국이 추진하고 있는 국가미사일방위체제(NMD) 개발 반대에 인식을 같이 한다는 전략적인 측면, 그리고 기타 교류와 협력을 증진시키기 위한 경제적인 측면으로 나누어 볼 수 있다.

그동안 러시아는 정치적으로 한반도 문제에 소외돼 불만이 많았다. 구 소련의 붕괴를 전후하여 북한을 도외시한 채 한국에 편향적인 접근을 한 결과 러시아는 한국과 북한 양쪽에서 모두 영향력을 상실했었다. 상실된 영향력을 회복하기 위해서 러시아가 남북한에 대해 등거리 외교를 하면서 한국에 대해서는 북한 카드를, 북한에 대해서는 한국 카드를 사용해야겠다는 자세를 취한 것은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다. 그러나 그동안은 북한과 러시아 관계를 한층 더 긴밀하게 끌어올릴 수단이 없었다.

구소련 시기처럼 러시아가 북한에 새로운 무기나 에너지 자원을 헐값에 원조할 수 있는 입장도 아니며, 그렇다고 북한이 러시아의 에너지자원을 국제적인 시세에 경화(경화)를 주고 사올 수 있는 경제력이 있는 것도 아니었다.

푸틴의 북한 방문에서 가장 강조되고 있는 이슈는 미국의 NMD 개발에 대한 반대이다.

현재 러시아는 “미국이 지배하는 1극적인 세계질서에 반대한다”는 것을 대외정책의 핵심과제로 제시하고 있다. 러시아 사람들은 NMD가 장차 러시아의 전략핵무기를 무력화할 수 있는 체제로 발전할 것이며, 이러한 NMD 개발이 바로 미국의 세계적 헤게모니를 공고화하는 수단이라고 인식하면서 반대하고 있다. 미국은 NMD가 필요한 이유로 북한 등의 장거리 미사일 개발에 대한 대응이라고 지적하고 있다.

여기에서 북한은 이중의 가치를 지닌다. 즉 NMD를 반대하는 힘을 결집하는 한 역할을 할 수 있을 뿐 아니라, NMD 개발의 명분 자체를 제거할 수 있는 원인도 되는 것이다.

이렇게 푸틴이 재발견한 북한의 가치는 미국이 주도하는 세계질서에 대한 반대라는 측면에서 북한이 갖는 전략적인 가치인 것이다.

푸틴은 ‘강한 러시아’를 대외적으로 강조하면서 중국과 함께 미국에 대응하는 힘의 결집을 시도하고 있다. 궁극적으로 강한 러시아는 러시아의 경제적 안정과 성장의 뒷받침 없이는 불가능하다. 푸틴도 러시아의 경제성장에 역효과를 가져올 만큼 미국과의 알력을 심화시키려고 들지 않을 것이다.

결국 푸틴은 대외적으로 강한 러시아를 내걸고 러시아의 영향력을 제고시키면서 경제적 성장을 함께 이루어내야 한다는 어려운 과제를 안고 있다.

이렇게 푸틴은 동북아에서도 경제성장을 위한 환경조성과 미국의 영향력에 대응하는 힘의 결집이라는 양면적인 게임을 하고 있다. 유도로 다져진 푸틴의 억센 손이 과연 이러한 양면적인 과제를 어떻게 요리하여 ‘가능성의 예술’로서의 정치적 기술을 발휘할 것인지 귀추가 주목된다.

북·러 관계의 정상화는 많은 긍정적인 요소를 내포하고 있다. 그러나 앞으로 북·러 관계가 발전하면서 러시아와 중국 및 북한을 중심으로 미국에 대응하는 힘의 결집이라는 요소가 동북아에서 지나치게 강조된다면, 이것은 대립과 갈등을 가져오는 것으로서 결코 바람직한 현상이 아닐 것이다. 우리는 새로운 변화가 갖는 양면성에 유의하면서 평양 상공에 형성되고 있는 새로운 기류를 조심스럽게 지켜봐야 할 것이다.

/ 문 수 언 숭실대 교수·러시아 정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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