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정부 들어 처음 열린 남북장관급회담의 합의문은 현재의 가파른 북핵(北核) 위기 상황에 비추어 볼 때 한가롭기 그지없다는 인상뿐이다.

회담대표들은 핵문제에 대한 정부의 강력한 의지를 북측에 전달했다고 하지만 회담의 결과물인 합의문에서는 그런 흔적을 찾을 수 없다.

북한의 핵무기 보유 시인으로 위기가 한층 고조됐지만 이 문제에 대한 합의문 내용은 지난 1월 회담 때 것을 되풀이 한 것이나 별반 다름이 없다. 상황은 급박해졌는데 합의 내용이 그대로라면 엄밀히 말하면 이번 회담은 사실상 뒷걸음질이라고 보아야 한다.

더구나 베이징 3자회담에서 한국이 제외되면서 남북장관급회담은 우리가 직접 북한에 핵문제를 거론할 수 있는 유일한 통로가 됐지만, 북한의 ‘핵문제에서의 남한 배제’ 전략만 거듭 확인하고 돌아온 셈이다.

합의문의 표현도 문제다. 북핵문제에 대해 북한의 책임은 한마디도 언급하지 않은 채 ‘남북이 평화적 해결을 위해 협력한다’고 하면 이는 남한보다 오히려 북한의 입장을 배려하는 뜻으로 해석될 수 있다.

북한의 핵개발은 명백히 남북 비핵화공동선언을 위반한 것인데 왜 이 사실은 합의문에서 단 한 줄도 지적하지 못하면서 통일축전 개최나 남북협력사업의 적극 추진 등은 단골 메뉴로 올라야 하는지 답답한 노릇이다.

이런 결과는 정부가 북한과의 대화 자체에 너무 매달리기 때문이라는 지적은 오래전부터 있어 왔다. 북한이 어떤 경우에도 남한은 대화와 협력을 포기하지 않을 것이라고 믿는다면 그런 대화는 대화로서의 기능을 상당부분 상실한 것이다.

이번에도 이 정도 내용이라면 한번쯤 합의문 자체를 우리가 거부하는 단호한 모습을 보이는 것이 앞으로의 회담 전략을 위해서 필요했을지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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