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가지가 길어서 슬픈 짐승이여”의 시인 노천명(노천명)은 그의 시처럼 명성이 길어서 슬프다. 한 여성단체가 ‘20세기를 빛낸 여성, 21세기를 빛낼 여성’으로 뽑은 30명에 들어간 그는 친일파(친일파) 논쟁에 휩싸였다. 일제 말기 ‘싱가포르 함락’ 등 침략전쟁을 찬양한 작품이 문제되고 있는 것이다. ▶아마도 한국인들이 가장 싫어하는 말이 ‘친일파’일 것이다. 친일파는 일제때 일본인이나 일본관헌에 빌붙어 반민족행위를 한 사람들을 말한다. 그때 친일파만 있었던 것은 아니다. 친청파, 친로파, 친미파 등 지금의 4대 강국을 앞세운 친(친)자 돌림의 그룹들이 있었고 각기 그들과의 친밀감을 과시했다. ▶그런데 ‘친할 친’자는 겨레붙이 같이 가까운 관계에 붙였던 좋은 말이다. 외할아버지 외삼촌의 외(외)자 보다 친자 붙은 가족이 더 가까웠던 시절이었다. 친할아버지, 친동생, 친조카, 친구(친구)가 바로 그 상징이다. 오래 두고 가까이 사귄 벗, 그 지기(지기)를 옛 선비들은 가양주(가양주)가 익거나 난초가 꽃을 피우면 불러서 함께 즐기며 친교(친교)를 더했던 것이다. 물론 오늘날도 아픈 친구를 위해 간을 떼어주는 벗도 있으니 변한 것이 아니다. ▶엊그제 국회에서 한 야당의원이 “청와대가 언제부터 친북세력이었느냐”고 힐문했다가 홍역을 치른 모양이다. 여당이 일어나서 발언자의 제명까지 거론했다니 권위주의 시대 찍어놨던 영상이 잘못 방영된 게 아닌가 하는 헷갈림마저 들 정도였다. ▶그런데 그 뜻 풀이가 더 재미있다. 발언한 야당측은 ‘친북은 북한과 가깝다’는 뜻이라고 했고, 여당측은 ‘친북은 용공(용공)’이라고 읽었다니 말이다. 친일파들에 의해 ‘친’자가 오염되더니 이제는 그것이 여·야에 따라, 세월에 따라 각기 다르게 풀이되는 세상이 된 모양이다.
저작권자 © 조선일보 동북아연구소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