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金龍喆·변호사

한총련 의장과 수배학생 가족들이 청와대 민정수석비서관을 만나 ‘한총련 합법화를 요청했다’는 보도가 있었다. 보도를 보면 한총련 의장은 민정수석비서관에게 “한총련은 유연하고 개방적인 단체로 거듭나려고 하는 만큼 합법화해줘야 한다”고 촉구했다고 한다.

그러나 한총련의 주장과는 달리 한총련은 전혀 변화하지 않고 있으며, 오히려 조직을 더 강화시키고 있다고 필자는 보고 있다. 한총련은 새시대를 맞아 새로운 학생운동을 전개하겠다고 하면서도 실제로는 이렇게 다짐하고 있다.

“올해 자주민주통일을 완성시키자. 이를 위하여 ‘학우 중심·민중 중심’ 사상으로 300만 학우들을 정치사상적으로 의식화, 조직화시켜 사회변혁운동의 주체로 강하게 폭발시켜야 한다.

학우들이 학생회를 좋아하지 않는다고 해서 학우들의 정서에 맞게 그쪽으로 학생운동의 방향성을 잡으면 자주민주통일의 결정적 국면을 열어야 한다는 근본 사명을 달성하지 못하고 좌절되고 만다. 중심도 목적도 불분명한 ‘새 것’은 ‘새 것’도 아니다.”

이 내용은 2003년 제11기 한총련 핵심 간부들이 한총련의 변화를 모색해 보겠다며 토론 자료로 삼은 ‘한총련 총노선(중상안)’에 나와 있는 내용이다. 이를 읽으면 한총련이 진정으로 변화하려고 하는 것인지, 아니면 ‘국가보안법 폐지를 통한 한총련 합법화’라는 한총련의 숙원(?)을 달성하려고 한총련의 변화를 위장하고 있는지 알 수 없다.

사실 한총련 의장은 민정수석비서관에게 한총련의 합법화를 요청하면서 한총련의 조직체계와 조직 운영원리, 공개 조직 외 비선(秘線)조직 존재 사실, 한총련 조국통일위원회 정책실의 친북노선 주도 사실 등 한총련의 실체에 대하여 제대로 알렸는지, 또한 민정수석비서관은 한총련의 실체를 정확히 알고서 ‘법무부, 검찰과 협의해 도움이 되는 방법을 찾아보겠다’고 답변했는지 궁금하지 않을 수 없다.

필자는 검사로 재직할 때 한총련 핵심 간부를 수사한 적이 있다. 한총련은 의장 등 공개된 간부들이 주도하는 것이 아니다. 특별 기구인 조국통일위원회, 중앙집행위원회 산하 정책위원회·조직위원회·투쟁국 간부 등이 한총련의 노선을 좌지우지하고 있다. 이들은 대학 재학생이 아니라 대부분 졸업생들이다.

조국통일위원회 정책실에서 북한 통일전선부 산하인 범청학련 북측 본부와 팩스, 인터넷 통신을 통해 범청학련 북측본부로부터 투쟁 지침을 전달받아 한총련의 노선을 정하는 것으로 파악됐다.

조국통일위원회 정책실, 정책위원회, 조직위원회 구성원의 인적 사항은 극비 사항이며, 한총련 의장도 그 구체적인 내용을 잘 모르고 있는 실정이다.

한총련이 진정으로 변화하고자 한다면 한총련 의장은 한총련의 실체를 솔직하게 공개하고, 앞으로 이 부분을 어떻게 변화시킬 것인지 국민들을 납득시켜야 할 것이다.

물론 한총련 수배학생들과 그 가족의 고통에 대해서는 안타깝기 그지없다. 하지만 수배학생 대부분은 한총련 핵심 간부들이다.

이들 한총련 핵심 간부들의 ‘교양’을 받은 후 얼결에 한총련에 가입했다가 처벌받은 수많은 학생들, 한총련 간부들의 주도에 따라 화염병와 쇠파이프 시위를 벌인 후 처벌받은 많은 학생들과 형평성을 감안해서라도 핵심 주동자급인 한총련 수배학생들에 대한 무조건적인 일괄 수배해제 요구는 검찰의 직무 포기를 강요하는 것과 다를 바 없다. 하물며 한총련이 전혀 변화하지 않고 있는 현 시점에서는 더욱 안 될 일이다.

결론은 간단하다. 한총련이 이적(利敵)단체로 계속 남을 것이냐, 아니면 건전한 학생회 조직으로 환골탈태할 수 있느냐는 한총련의 몫이지 정부에 요청할 성질의 것이 아니다. 한총련의 실체에 대한 솔직하고 충분한 공개, 그리고 진정한 변화가 없고서는 한총련을 이적단체에서 철회한다는 것은 있을 수도 없고 있어서도 안 된다.

지금은 한총련이 국민들 앞에 솔직하게 대답할 때이지 정부가, 법무부가, 검찰이 먼저 나서 풀어주겠다고 나설 때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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