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은 조선일보에 이어 이회창(이회창) 한나라당 총재의 국회연설을 극렬하게 비난하고 나섰다. 6·15 공동선언으로 남북간에 화해분위기가 조성되고 있다고 믿고 있는 많은 국민은 북한의 이런 태도에 어리둥절해 하며 의아스럽게 생각할 것이다. 그러나 이것은 아무리 남북정상이 만나 악수를 나누고 화해를 다짐해도 북한의 본질은 변하지 않았다는 구체적인 예증이다. 자신들의 비위에 맞지 않거나, 자신들이 추구하는 목표와 틀리면 ‘반(반)통일세력’으로 매도하거나 ‘반민족세력’으로 몰아붙이는 것은 북한이 지난 반세기 동안 써온 선전선동 전술이다.

북한은 왜 요즘와서 남쪽의 특정집단과 특정인을 집중적으로 매도하고 있는 것일까. 우선 생각할 수 있는 것은 6·15이후 남한에서의 북한과 김정일의 위상이 상당히 달라졌다는 판단 아래 남한내에 그들의 위력과 영향력을 각인시키려는 발상이다. 그래서 그들은 자기들이 남한내의 여러 인식과 가치에 대해서 스스로 재판관 노릇을 하며 ‘너는 틀렸다’느니 ‘너는 폭파해 버리겠다’느니 하는 저돌적이고 자극적인 용어를 서슴지 않는 것이다.

북한은 이렇게 함으로써 남쪽내의 여론을 남과 북을 기축으로 분명히 드러내서 양분시키려고 시도함직하다. 말하자면 야당총재나 매체의 비판적 발언을 조기에 봉쇄함으로써 다시는 그런 발언이 나오지 못하도록 함과 동시에 그것을 통해 남쪽의 견해가 숨을 것은 숨고 드러날 것은 드러나게 해서 분명히 색깔을 구분하겠다는 것이다.

북한은 이제 북한과 관련된 남한내의 여러 견해와 쟁점에까지 좌지우지하기 시작했다. 과거에 없던 일이다. 북한이 6·15이후 자신감이 생겨서 그런 것인가. 그렇다면 남한내의 특정 비판세력이나 보수집단을 철저히 길들이고 모두 북의 눈치를 살피도록 장악할 수 있다는 자신감은 어디서 생긴 것인가.

그러나 북한의 이런 태도는 자칫 자충수가 될 수도 있다. 남한 사람들이 북한을 너그럽게 보는 것은 북에 대한 우리의 여유와 북한을 도와 같이 살아가자는 의식때문인데 만일 북한이 그것을 자신들의 우월성이나 지배력으로 착각한다면 남한내에 상당한 역반응을 일으킬 수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이미 야당은 분노하고 있고 YS의 방북배제라는 북한당국의 어설픈 정략은 많은 사람들의 눈살을 찌푸리게 하고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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