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렉산드르 만수로프
/하와이 아시아태평양 안보연구센터 교수

베이징에서 열린 미·중·북 3자회담은 실패로 끝났다. 북한은 핵무기를 갖고 있음을 공식 선언하면서, 미국의 행동에 따라 북한은 핵무기 실험을 할 수도 있고, 수출하거나 사용할 수도 있다고 말했다. 북한은 국제사회의 일치된 뜻과, 동맹인 중국의 일관된 설득과, 남한에 대한 (한반도 비핵화 공동선언의) 법적 의무를 전적으로 무시한 채, 이제 핵 보유국 대열에 9번째로 합류했음을 선언한 셈이다.

이제 공은 미국 쪽으로 넘어왔다. 미국이 택할 수 있는 길은 세 가지다. 첫째는 북한의 비밀 핵개발 활동에 대한 구체적 증거가 없으므로 이것을 공갈로 치부하는 것이다. 둘째는 북한의 핵보유 선언을 무시하고, 중국 및 한국 등 동북아 국가들과 협력해 북한을 경제적·정치적으로 완전히 고립시키고 질식시키는 길로 나가는 것이다. 셋째는 미국이 선택하는 시점에 북한의 핵시설을 공격해 파괴함으로써 미국이 설정한 ‘레드 라인(red line)’을 강화시키는 길이다.

첫 번째 방안은 부시 백악관의 강경파들로서는 정치적으로 받아들일 수 없다. 그것은 또 미국 정보기관들이 오래 전부터 북한이 이미 1~2개의 핵무기를 갖고 있을 것으로 믿어왔던 것과도 배치된다.

북한을 목졸라 죽이거나 ‘내부 몰락으로 서서히 붕괴’시키는 두 번째 방안은 비록 국무부 쪽이 (무력 사용보다) 선호하기는 하지만, 그것은 대량살상 무기를 획득하려는 불량배 국가들에 대해서는 선제공격을 가할 수 있다는 정책의 신뢰성을 잠식하게 될 것이다. 그렇다면 초강대국인 미국이 받아들일 수 있는 단 하나의 길은 군사적 방안이며, 그에 따른 북한 체제변화다.

미국의 어떤 행정부든 동맹관계인 한국과 사전협의와 공식적인 동의 없이 북한을 정밀 유도 무기로 공격할 것이라고 상상하기란 어렵다. 이라크에서 무소불위의 군사력으로 순식간에 압도적인 승리를 거둔 부시 대통령조차 한국과 긴밀한 협의를 생략하고 남한 국민들과 서울 시민들의 여망을 외면하는 길을 선택하지는 못할 것이다.

따라서 오는 5월 노무현 대통령의 방미가 동북아시아의 평화와 안보에 결정적 중요성을 띠게 될 것이다. 이번 정상회담은 단순한 상견례가 아니라, 미국 대통령이 북한 핵 위기를 무력으로 종식시킬 필요성을 강조하면서, 북한에 대한 군사행동에 한국 대통령이 나라를 이끌고 동참할 것인지를 묻는 전쟁준비 회의가 될 공산이 크다. 이 정상회담은 노 대통령의 신념, 특히 북한 핵 문제를 평화적으로 해결하겠다는 결의를 시험하게 될 것이다.

이 회담에서 미국이 한국에 던질지도 모를 질문은 “당신들은 우리(미국) 편이냐, 아니면 핵 무장을 한 북한 편이냐”라는 것이다. 5월 한·미 정상회담은 50년에 이른 한·미 군사동맹의 존속 및 효율성 여부에 대한 가장 가혹한 시험기회가 될지 모르며, 향후 한·미 군사 안보관계의 장기적 존속 여부에 극적인 영향을 미칠지 모른다.

병 안에 갇혀 있던 핵 마귀(魔鬼)가 이제 뚜껑을 열고 밖으로 나왔다. 북한은 중국·러시아·한국·미국·일본 등 모두에게 자신이 핵 보유국임을 알렸다. 한국은 다음주 평양에서 열릴 제10차 남북 장관급 회담에서 북한의 생각과 북한의 핵 야망의 심각성을 탐지해 볼 수 있을 것이다. 남북한 고위 대화가 결렬되면 다음달 미국을 방문할 노 대통령의 입지가 좁아질 것이고, 핵 위기를 평화적이고 독자적인 방법으로 해결해 보려는 그의 노력을 더욱 어렵게 만들 수 있다.

베이징 3자회담은 중·북 동맹의 붕괴를 가져왔다. 과연 이 외교적인 실패가 힘을 통한 김정일 정권의 해체와 북한의 종말과정을 가동시키게 될 것인가, 아니면 한·미 간의 전략적 동맹관계를 해체시키는 결과를 가져올 것인가. 노 대통령은 ‘악’에 맞서 전쟁을 할 것이냐, 아니면 미국의 뜻을 거스르면서 핵을 가진 북한과 평화롭게 지낼 것이냐, 하는 힘든 선택을 해야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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