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독(재독) 학자 송두율씨가 ‘통일맞이 문익환목사 기념사업회’가 주는 제5회 ‘늦봄통일상’을 받기 위해 오늘 입경(입경)키로 했으나 불투명한 상황으로 바뀌고 있다. 그는 70년대 이래 북한과 관련된 일련의 활동 등으로 인해 지금껏 입국이 불허돼온 인물이어서 그 귀추에 주목치 않을 수 없다. 문제는 그의 ‘입국조건’에 따른 것으로 밝혀졌다. 당초 언론들은 이번에는 그간 당국이 입국허가의 조건으로 제시해온 ‘준법서약서’를 쓰지 않는 대신 국가정보원에서 간단한 경위조사만 받는 것으로 입국을 허용했다고 일제히 보도했다.

국정원 측은 이 문제와 관련, “송씨가 귀국하면 정상적 사법절차를 밟을 것이며 준법서약서도 반드시 받는다는 입장”임을 3일 밤 다시 분명히 했다.

송씨의 입경 추진은 남북정상회담 이후 조성된 우리 사회 일련의 분위기를 반영하는 조치의 하나로 얼핏 치부해볼 수 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문제는 그가 단순한 ‘통일운동가’나 ‘민주화운동가’를 넘어 국정원에 의해 이미 ‘김철수라는 가명을 쓰고 있는 북한 노동당 정치국 후보위원’으로 규정된 인사라는 데 있다. 국정원은 작년 2월 법원에 제출한 사실조회 답변을 통해 송씨의 이러한 비밀신분은 “의문의 여지가 없을 정도로 명백하다”면서, 이를 뒷받침하는 근거로 “귀순자들의 증언, 외국 정보기관 제공 자료 및 각종 첩보 등 수많은 자료가 있으나, 보안상 그 구체적 내용을 일일이 밝히기 어렵다”고 발표했다.

송씨는 자신을 지난 98년 발간된 저서에서 ‘당서열 23위의 김철수’로 지목한 황장엽씨를 상대로 명예훼손 혐의로 민사소송을 제기해 국정원이나 황씨의 주장을 부인하고 있다. 이 소송은 아직 1심도 끝나지 않은 상황이어서 귀추를 좀더 두고봐야 할 것이다. 그러나 국정원이 자체의 입으로 ‘의심의 여지 없는 김철수’로 송씨를 보고 있는 이상 실정법을 초월한 어떠한 편의적인 조치도 취할 수 없는 입장이며, 따라서 이번에 서약서 문제 등에 대한 입장을 다시 밝힌 것은 당연한 조치라 할 수 있다. 송씨의 문제는 기본적으로 대한민국의 체제 문제를 함축하는 중요한 사안이 아닐 수 없다. 그의 북한과 관련한 여러 가지 행적들은 어떠한 형식으로든 사법적 규명이 있어야 하며 그러한 연후에야 정치적 처리 여부도 논의될 수 있는 것이다. 따라서 최소한의 조치라 할 수 있는 준법서약서조차 쓰지 않은 채 그의 방한이 추진된다는 것은 쉽게 받아들일 수 없는 일이다. 체제 문제에 대한 우리의 태세는 언제든 분명하지 않으면 안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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