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북정상회담의 결과에 따라 앞으로 북한과의 접촉은 계속 예정되어 있다. 이번 적십자회담뿐 아니라 7월 중의 당국자회담 등 여러 갈래의 회담이 열릴 것이며, 그때마다 기자들은 취재에 나서야 한다. 그런데 이번 적십자 회담에서 보았듯이 그때마다 북한이 취재기자의 입북 또는 취재에 제동을 걸어올 가능성이 있다.

정부는 문제가 생길 때마다 해당언론사에 책임을 떠넘기거나 북한에 사정할 것이 아니라 우리 체제의 본질적인 가치가 걸린 이 문제에 대해 확고하고도 일관된 원칙을 세워야 한다. 그리고 그 원칙에 따라 북한당국과 포괄적인 절차를 강구해야 한다.

그런데 우리 정부당국은 벌써부터 발뺌의 조짐을 보이고 있다. 최근 김순규(김순규) 문광부 차관은 국회문광위에서 조선일보 기자에 대한 북한의 입북(입북)거부와 관련해 이렇게 말했다. “통일부 측은 상대방(조선일보)이 언론사란 특성 때문에 문제점을 발견하고 해당 언론사에 대표기자 교체를 제시했는데 해당 언론사에서 끝까지 고집했다는 상황이 있었던 것 같다. ”

김 차관의 말을 액면 그대로 해석하면 이번 조선일보 기자 입북거부 사태의 책임은 북한과 정부에는 없고, 오로지 조선일보에만 있다는 투다. 그의 말 속에는 조선일보가 시키는 대로 했으면 골치아픈 문제가 생기지 않았을 터인데 조선일보가 평지풍파를 일으켰다는 생각이 깔려있는 것 같다.

그렇다면 정부는 무엇하는 곳인지 김 차관에게 묻고 싶다. 정부는 국가의 권능(권능)을 집행하는 곳이다. 국가의 권능을 제대로 집행하려면 우리 체제가 갖고 있는 가치를 지키려고 노력해야 한다. 더구나 김인구 기자는 북과의 합의에 따라 선발된 금강산 적십자회담 대표단 16명 가운데 일원이다. 그는 통일부 기자실이 자체적으로 정한 기준에 따라 추첨을 통해 선발된 대표기자(pool기자)다. 북한 측으로부터 신변안전 보장각서도 받았다. 북한으로부터 받은 것이 포괄적 신변안전보장각서라서 특정개인에 적용되는 것은 아니라고 말할지 모르나 북한이 ‘포괄적 각서’를 준 것은 우리 측이 누구를 대표로 선발하든 신변안전을 책임진다는 뜻이다.

김대중 대통령은 지난 평양 정상회담 때 북측이 조선일보와 KBS기자의 취재를 거부하자 우리 사회의 양보할 수 없는 가치인 언론자유를 침해당할 수 없다면서 일관된 원칙을 고수해 양사의 기자들도 취재에 나설 수 있었다. 그런데 김 차관의 말은 어떻게 그렇게 다를 수 있는가. 우리는 김 대통령의 원칙이 흔들리지 않을 것임을 기대하며 다시는 북한이 선별적으로 남한의 매체를 정하는 일이 없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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