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강산 적십자 회담이 이상한 방향으로 흐르고 있다. 우리 측의 8·15 이산가족 방문단 교환 제의에 대해 북측은 ‘선(선) 비전향 장기수 송환, 후(후) 이산가족 교환’ 아니면 최소한 병행 추진을 요구하고 있다. 북측의 이런 태도는 지난 평양 정상회담에서 8·15 이산가족 방문단 교환에 먼저 합의하고 비전향 장기수 송환 등 다른 인도적 문제를 추후 논의하기로 했다는 정부의 당초의 말과는 다른 것이다. 또 지금 같은 형편이라면 이산가족 교환방문과 함께 생사확인, 면회소설치도 합의하도록 하겠다던 우리 대표단의 당초의 다짐 역시 오리무중에 빠질 공산이 크다.

그런데도 우리 측은 무엇이 두려운지 분명한 입장을 정하지 못할 뿐만 아니라 “29일의 2차회담에 기대한다”는 불투명한 말만 하고 있다. 북한은 이른 바 ‘6·15 공동선언에 포함된 자주의 원칙’에 따라 하고 싶은 주장을 다하고 있는데 우리는 이산가족 문제와 함께 단계적으로 추진하려던 국군포로와 납북자 문제를 꺼내지도 못하고 있다. 오죽 답답했으면 납북자 가족들이 ‘죽기 전에 아버지 손 한번 잡아보는 것이 소원’이라며 “아버지를 돌려달라”는 탄원서를 김정일 국방위원장에게 보냈겠는가. 본질적으로 따져도 비전향 장기수 문제는 국군포로나 납북자 문제와 연계할 성질의 것이지, 이산가족 문제와 연계할 문제가 아니다. 이인모(이인모) 송환협상 때도 납북된 동진호 선원의 송환을 가장 중요한 연결고리로 삼아 논의했었다.

모처럼의 기회를 살리기 위해서 조심스럽고 신중하게 대처하려는 적십자 당국의 고충을 이해한다 해도 원칙과 줏대가 있어야 한다. 이번 회담이 남북 정상회담 후 처음 갖는 것인 만큼 남북정상들의 화해정신을 살리기 위해서는 서로 기탄없이 이야기해야 하고 순리에 따라야 한다. 그런데도 과거와 같은 회담패턴이 되풀이된다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북한의 눈치나 비위를 맞춰서 얻는 ‘화해’는 참다운 화해라 할 수 없고, 그렇게 해서 화해가 이룩되는 것도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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