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일 북한의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우리측 남북정상회담 고위 관계자에게 언급한 것처럼 북한이 노동당규약을 손질한다면 남북관계는 중대한 변화의 계기를 맞게 된다. ‘온사회의 주체사상화와 공산주의 사회 건설’을 핵심으로 하는 노동당규약은 바로 한반도 적화통일의 지침서나 다름없다. 당(당) 우위 국가인 북한에서 당의 방침은 모든 것에 우선하고, 당규약은 헌법보다도 상위개념으로 기능한다. 북한이 6·25를 일으킨 것도 여기에 뿌리를 두고 있으며 휴전 후의 온갖 대남공작도 여기에 근거하고 있다.

그런데 이번 정상회담에서 김 대통령이 김 위원장의 보안법 폐지요구에 대해 “북한에도 노동당규약이 있고, 한반도 전체를 공산화한다는 구절이 있으며, 북한형법에는 우리 (보안법)보다 더 심한 것도 있다”며 “이런 것을 바꿔야 한다”고 지적하자 김 위원장도 이해하고 공감했다고 한다. 김 위원장의 ‘이해’와 ‘공감’정도가 어느 정도이고, 그 말이 전적인 진실인지는 가늠할 수 없지만, 그런 언급이 있었다는 것 자체만 해도 중대한 변화이다. 더구나 노동당규약을 실천하기 위한 수단의 하나인 북한형법 개정에도 이해와 공감을 표시했다면 남북관계는 대립과 갈등을 넘어 본질적으로 변할수 있으며, 그야말로 공존과 화해의 새 시대로 진입할 수 있다. 북한 형법이 적시한 국가반역죄의 경우 우리 국가보안법과 비교가 안될 정도로 가혹하고 추상적이어서 ‘귀에 걸면 귀걸이, 코에 걸면 코걸이식(식)’으로 처벌할 수 있게 돼 있다.

북한이 아무리 1인지배 국가지만 김 위원장이 ‘공감’했다고 해서 노동당규약이 당장 바뀌지는 않는다. 당규약은 당대회를 통해서만 바뀔 수 있으며, 그런 점에서 지난 80년 6차대회 이후 20년 동안 열리지 않은 당대회가 올해중에 열릴지도 의문이다. 형법에도 마찬가지로 개정절차가 있다. 이처럼 당규약 등을 바꾸려면 시간과 절차가 필요하다.

따라서 우리 국가보안법 논의도 북한의 움직임과 궤를 같이해야 한다. 노동당규약이 남한 적화혁명을 위한 ‘강령’이라면 우리의 국가보안법은 적화혁명을 막기 위한 수단이라는 점에서 그 둘은 서로 짝을 이루고 있는 것이다. 보안법에 대해 일방적이거나 실효성 없는 문제 접근 방식은 자제하는 것이 옳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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