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머니는 텔레비전에 김일성의 얼굴만 나오면 끄게 했습니다. 김일성이 죽고 난 후의 김정일에 대해서도 마찬가지였습니다. 납북당한 남편의 생사 여부를 지금껏 애타게 기다리고 있는 어머니는 통일을 바란다면서도 빨갱이들과는 함께 할 수 없다고 입버릇처럼 되뇝니다. ” 이런 것이 납북가족 또는 이산가족의 공통된 심정이었다. ▶그런데 그런 대북인식이 하루아침에 갑자기 바뀌기 시작했다. 북괴(북괴)란 표현은 최근 매스컴에서 거의 쓰지 않는다. 그러나 군대에서는 공식용어로 존재했던 모양이다. 국방부가 남북정상회담 후속조치로 북괴용어의 폐기와 주적(주적)개념 재정립을 검토한다고 한다. 새 역사를 창조하려는 마당이니 어쩔 수 없는 변화인 것만은 분명하다. ▶되돌아 보면 북한에 대한 교육은 세대마다 다르게 받아온 것이 사실이다. 6·25 전쟁이 일어난 1950년대 북한은 전쟁을 도발한 ‘괴뢰도당’이었고, 북진통일·멸공(멸공)의 대상이었다. 하지만 60년대 후반부터 멸공은 승공(승공)으로 바뀌었고, 북한의 호칭 역시 ‘공산괴뢰’에서 ‘북한공산집단’으로 바뀌어 갔다. ▶정상회담 이후에는 북한은 ‘급박한 화해의 대상’이 되었고, 협력의 실험장으로 변하고 있다. 이런 갑작스런 상황변화는 우리 군대는 물론 학교, 국민교육에서 상당한 혼선을 야기할 것이며, 상당한 인내심을 요구할 것이다. 남·북한의 체제가 바뀐 것은 아니기 때문에 더더욱 그렇다. 문제는 우리 남쪽만 바뀌고 북쪽의 ‘교육’과 ‘용어’는 안 바뀔 때다. 한쪽만으로 민족의 역사를 쓸 수는 없다. ▶그렇다면 먼저 남·북한이 우리의 근·현대사를 있는 그대로 객관적으로 서술하는 작업을 시도해야 하지 않을까. 하기야 ‘객관적’이란 말의 뜻도 서로 다르지만 말이다. 왕조시대의 역사는 ‘치국(치국)의 귀감(귀감)’이었지만 오늘의 역사는 ‘생활의 길잡이’인 까닭이다. 이런 상황은 남·북한 모두 똑같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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