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북 정상의 합의에 따라 대한적십자사는 23일쯤부터 북한과 적십자회담을 갖고 8·15 이산가족 교환방문 문제를 논의할 예정이다. 한적(한적)이 구상하고 있는 교환방문규모는 100명 정도로, 실무협상을 통해 시기 규모 장소를 확정지을 방침이다. 이 정도 규모도 지난 85년보다는 배나 많은 것이고, 15년 만에 교환방문이 재개된다는 점에서 그것 자체로도 의미가 없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이러한 방식은 자칫하면 이산가족 문제가 그 본질을 간과한 채 ‘전시적 행사’로 끝날 우려가 있다. 우리는 지난 85년의 만남이 얼마나 허망했던가를 기억하고 있다. 당시 이산가족들의 만남은 당사자는 물론 온국민들을 흥분시켰지만, 그것은 ‘한바탕 눈물을 쏟는 최루탄행사’로 끝나고 말았다. 지금까지 그들끼리 편지 한장 교환은 고사하고 죽었는지 살았는지도 모르는 처절한 상태다.

한적은 오는 8·15까지 시간이 얼마 없는 점을 감안해 이번 협상에서는 우선 교환방문에 초점을 맞추고 ‘이산(이산)문제’의 제도적 해결은 추후 추진할 방침인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아무리 시간이 촉박하더라도 교환방문과 제도적 해결을 병행추진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교환방문은 아무리 확대해도 현재 123만명으로 추산되는 이산 1세대들에게 돌아갈 혜택은 미미하기 짝이 없다. 그것은 오히려 만나지 못하는 사람들의 아픔만 더 증폭시킬 우려가 있다.

그래서 이번 협상에서 생사확인, 서신왕래, 면회소 설치, 고향방문을 할 수 있는 제도적 장치를 마련해야 한다. 시간상 제약으로 구체적인 협상이 어렵다면 ‘원칙적 합의’라도 받아내야 한다. 우리가 이 점을 특히 강조하는 것은 이번 교환방문이 지난 85년의 전철을 밟지 않는다는 보장이 없기 때문이다. 지금의 상황은 물론 그때와는 다르다. 남북 정상 간에 합의를 했을 뿐더러 남북간 교류와 협력의 분위기가 어느 때보다도 성숙해가고 있다. 그렇다면 더 더욱 이산가족 문제의 제도적 해결 장치를 마련해야 한다.

북한 적십자회가 지난 17일 보내온 전통문의 의제(의제) 부분도 걸리는 대목이다. 북적(북적)은 ‘인도적 문제를 풀어나가기 위한 대책’을 의제로 하자고 제의해 ‘선(선) 이산가족 교환방문, 후(후) 장기수 송환’이라는 우리 방침과는 달리 장기수 문제를 더 중시하거나 최소한 동시에 할 수 있는 길을 열어놓았다. 이렇게 되면 이산가족 문제가 의외의 국면을 맞을 수도 있다는 점에서 걱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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