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북 정상이 합의한 5개항의 기본 뼈대는 남북한 주장의 ‘주고 받는’ 절충 내지 병행에 있는 것 같다. 남북통일의 자주적 해결을 천명한 항목과 상호 호혜정신에 따라 남쪽의 ‘국가연합’과 북쪽의 ‘연방제’ 사이의 공통분모를 찾아내자는 합의문에 그러한 정신이 드러나 있다. 특히 ‘자주’의 문제는 7·4공동선언 이후 남북기본합의서에 이르기까지 일관되게 천명된 ‘당위’나 다름없다. 그러나 논리적으로 당연한 이 명제가 현실과 어떻게 조화될 수 있는지, 또는 같은 용어에 대한 남북의 개념 차이를 어떻게 극복할지가 앞으로의 문제다. ‘우리 민족끼리 힘을 합쳐 자주적으로 해결하겠다’고 한 것은 ‘외세에 의존하거나 외세의 간섭을 받음이 없는 자주적 해결’이라고 했던 7·4공동선언보다는 한결 세련된 면을 보였지만 여전히 주변국, 특히 4강(강)과의 관계에서 적지 않은 논란을 일으킬 소지는 있다. 남북정상이 보다 현실을 중시했다면 ‘자주’를 뼈대로 하되 주변강국을 아우르는 문안도 도출할 수 있었을 것이다. 또한 지금껏 주한미군 철수를 ‘자주’개념에 포함시켜온 북한이 이번 합의를 실천하는 과정에서 그 문제를 다시 제기해 남북관계가 또 어려워질 수도 있다.

광복절 때 이산가족들이 교환방문을 할 수 있게 된 것은 지난 85년 이후 처음으로 의미있는 일이다. 그러나 이산가족 문제는 ‘1회성 이벤트’보다는 생사확인, 서신왕래, 면회소 설치, 고향방문 등의 순서로 접근하는 것이 옳을 것이다. 이산가족 교환방문과 비전향 장기수를 맞바꾸기로 한 점에도 논란의 여지는 있다. 비전향 장기수 문제는 당연히 북한에 억류된 납북어부나 국군포로 등과 연계시켜 논의해야 하는데 합의서 어디에도 그런 흔적이 보이지 않는다. 김정일 위원장은 북한이 터부시하던 ‘탈북자’ 문제도 거침없이 이야기했는데 우리 측도 앞으로 국군포로나 납북어부 문제를 제기해야 할 것이다.

이런 의문들에도 불구하고 이번 합의를 통해 당국간 대화가 지속될 수 있도록 합의한 것은 아주 다행한 일이다. 아쉬운 것은 이번 선언에 한반도 평화와 안전에 관한 항목이 없다는 점이다. 이번 남북 대좌에서 우리가 바랐던 것은 ‘경제적 지원을 주고 한반도의 평화를 얻자’는 것이었다. 우리 지도층은 기회있을 때마다 “우리가 북한을 지원하는 것은 평화에 대한 보험을 드는 것”이라고 했다. 그런데 이번 공동선언에는 92년 남북기본합의서에도 들어있던 상호불가침 또는 무력 포기에 대한 언급이 없다. 뒤늦게 우리 대표단은 ‘해설자료’라는 것을 통해 ‘침략도 위협도 않기로 했다’고 일방적으로 설명했으나 이 문제는 당연히 공동선언에 포함되었어야 했다는 것이 우리의 생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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