닉슨 미국 대통령이 72년 중국방문 때 마오쩌둥(모택동)을 만난 것은 2월 21일 오후의 일이었다. 일정에 없던 이 만남은 마오의 건강이 좋지 않은 데다 닉슨으로서는 “되도록 질문을 하지말아 달라”는 조언을 받고 있었기 때문에 몹시 신경이 쓰이는 것이었다. 그러나 이 만남에서 상대적으로 말을 많이 한 것은 마오쪽이었다. 닉슨이 구체적인 양국관계 정상화를 논의하자고 하자 마오는 “철학적이고 원칙적인 이야기만 하고 구체적인 이야기는 실무자와 이야기하라”고 했다고 한다. ▶닉슨이 주로 저우언라이(주은래)와 회담을 갖게 된 배경이다. 두 사람은 인민대회당과 영빈관에서 네 차례의 회담을 갖고 외교연락소 설치와 학자, 기자 교류 등에 합의했다. 저우언라이는 첫 회담에 앞서 이번 김정일이 백화원 영빈관에서 그랬듯이 인민대회당에 설치된 대형 산수화 앞에서 기념사진을 찍기도 했다. ▶사정과 경우는 다르지만 이번 남북정상회담에서도 그와 비슷한 상황이 벌어졌다. 14일 오전에 있었던 공식적인 ‘확대정상회담’ 에는 김정일 국방위원장은 나오지 않았다. 전날 순안비행장까지 나와 김 대통령을 영접했던 그는 회담에 참석하지 않고 형식적인 국가수반인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장 김영남이 김대중 대통령의 상대역으로 나와 현안 문제를 논의했다. ▶오후엔 김정일과의 두 번째 만남이 이루어져 김 대통령의 체면을 살리긴 했지만 ‘공식회담’에 김정일이 나오지 않은 것은 아무래도 모양이 이상했다. 실무합의 당시 김정일과는 ‘상봉’만 있고 그는 회담에는 나오지 않을지 모른다는 국민들의 많은 우려에 대해 극력 그렇지 않다던 정부도 못내 당황스러웠던지 이 회담을 처음엔 ‘확대정상회담’이라 했다가 다시 ‘확대회담’→‘공식면담’으로 격을 낮추는 소동을 벌였다. ▶중국과 북한의 이런 행태는 사회주의 국가의 다반사인지 모른다. 그렇다면 정부로서는 사전에 그것을 분명히 알고 대비했어야 하지 않을까. 김일성·김정일 부자의 대형 초상화 아래서 김 대통령과 김영남이 동격으로 악수하는 모습을 보고 우리 국민들이 어떤 생각을 했을지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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