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기는 평양, 가랑비가 오고 있다. ” 72년 8월 29일 남북적십자 본회담에 동행한 공동취재단의 제1보(보)는 감격적이었다. 90년 10월 16일, 제2차 남북고위급 회담 참석차 강영훈(강영훈) 당시총리 일행이 육로로 도착한 평양역은 썰렁했다고 본지 취재기자는 전했다. 2000년 6월 13일 오전, TV로 생중계된 순안공항의 표정은 날씨만큼이나 쾌청했다. 환영 열기 속에 손을 맞잡은 정상의 모습 또한 인상깊었다. ▶55년 만에 남북정상이 만난 평양에 세계언론의 이목이 쏠리고 있다. 냉전(랭전)의 벽을 허물 것인지에 쏠린 회담 자체의 관심도도 높지만, 별로 알려지지 않은 북의 실상과 김정일 위원장에 대한 호기심도 적지않은 것으로 보인다. 이제까지 북한은 몇 차례 제한된 보도를 허용했으나 직접취재는 불허했기 때문이다. 우리 역시 거리상으로는 지척이나 아는 것이 별로 없어 궁금하기는 마찬가지다. ▶최근 TV에 방영된 ‘평양사람, 평양생활’은 비록 걸러진 내용이라고 해도 변화된 북의 실상을 이해하는 데 도움을 주었다. 바지 입은 여성들은 볼 수 없었으나 머리모양과 옷차림이 매우 화사해 보였다. 춤이나 가요도 대중화되어 가고 있고, 부분적이나마 바깥문화의 흔적도 엿볼 수 있었다. 평양의 고려호텔에서 독일 벤츠 자동차 판촉행사가 열리고 있는 광경도 이색적이었다. ▶역사의 현장에 취재경쟁이 이는 것은 너무나 당연하다. 이번 남북정상회담에 세계유수의 신문 방송 통신들이 취재를 희망했으나 북측은 ‘남측 취재기자단 50명’만을 허용했다. 1000여명에 달하는 외신기자들은 도리없이 서울의 프레스센터에 진을 쳤다. 방북 기자들의 직접취재도 금지됐다는 얘기가 들린다. ▶취재난립을 막기 위해 몇 기자의 대표취재 시스템인 풀(pool)제를 활용하는 관행이 있다. 이번 방북 취재단은 공동취재망의 성격을 띠고 있어 외신들은 이들의 풀기사를 받아 ‘서울발(발)’로 타전하게 된다. 직접취재가 안 된다니 국내외 언론들은 공급기사만 받을 수밖에 없다. 그래서 북한기사는 거의 발표기사이고 허가된 기사이고 그리고 인상기일 수밖에 없다. 취재진이 북한을 자유롭게 취재할 수 있는 날이 올 수도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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