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4후퇴 때 열다섯살이었다. 아버지를 따라 고향인 평양을 떠나 남쪽에 내려와서 이제는 환갑이 훨씬 지났다. 당시에는 평양에 남아 계시던 어머니, 남동생과 잠시의 이별인줄 알았는데 생사확인조차 못한 지 벌써 50년이 다 됐다.

오늘 남북한 정상이 평양 순안공항에서 반갑게 손을 잡는 장면을 TV로 보면서 서울에서 평양이 비행기로 한 시간도 채 안되는 거리란 사실을 새삼 절감했다. 바로 그 ‘한 시간도 안 되는 평양’을 여지껏 밟아보지도 못했다는 안타까움이 밀려와 그저 눈물만 흘렸다. 50년간 못 만난 어머니와 동생이 너무 보고 싶고, 어릴 때 뛰놀던 모란봉과 을밀대가 너무 가보고 싶다.

하지만 그럴수록 ‘큰 기대하지 말자’고 다짐하고 또 다짐했다. 72년 7·4남북공동성명 발표 때에도 금방 통일이 되는 줄 알고 흥분했었고, 그 이후에 30여년간 고향에 갈 수 있다는 기대는 번번이 물거품이 됐기 때문에, 이번에도 또다시 실망을 하게 될까 걱정스러운 마음이 앞선다.

모든 실향민들이 다 똑같겠지만, 단 5분이라도 좋으니 지난 50년간 단 하루도 잊은 적이 없는 어머니와 동생을 만나서 이야기라도 나누어 보고 싶은 게 솔직한 마음이다.

“정치 지도자님들 제발 이번만은 몇 사람을 위한 쇼가 안되도록 해주세요. ” /김순화 65·실향민·서울 동작구

◈ 학교 현장에서는 북한에 대한 관심을 찾아보기 힘들다. 김대중 대통령이 평양에서 김정일 국방위원장과 만나던 바로 그 순간에도 아이들의 대화 주제는 대중가수나 게임이었다.

나 밖에 모르는 10대들의 특징이라고 할 수 있지만, 이들을 보면서 마음이 가벼울 수 없다. 우리 청소년들이 언제부터 이렇게 나의 일에만 관심을 갖고, 주위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든 나와 관계 없다는 생각을 갖게 됐을까. 혹시 이런 아이들을 만든 사람들이 바로 우리 부모들, 또 교사들은 아닌지 반성을 하기도 한다.

하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비관적으로만 볼 이유도 없다는 생각이다. 청소년에서부터 노인에 이르기까지 정치가 어떻고, 체제가 어떻고 하는 식의 지나친 관심이 오히려 국론을 극단으로 몰고 가고 또 분열을 일으키지 않았던가.

문제는, 이런 아이들에게 오늘날 북한을 어떻게 설명하느냐는 것이다. 기성세대인 교사들은 전쟁을 겪은 세대이든 아니든 혼란스럽다. 어쨌든 청소년들이 정확한 정보에 입각해 나름대로 주관을 세울 수 있는 교육기준이 필요하며, 이런 일은 교육자들에게 남겨진 과제가 아닌가 싶다.

/김은주 영란여자정보산업고 교사

◈ 사실 큰 관심이 없었다. 여느 해외 순방과 다른 게 무엇일까 하는 생각도 있었다.

하지만 13일 아침, 약 30분 간격으로 방송된 서울공항과 평양 순안공항에서의 정상회담 행사를 지켜보면서, 나도 모르게 가슴이 벅차왔다.

특히 김대중 대통령이 평양 순안 공항에 도착해 트랩을 내려오기 전에 오른쪽으로 돌아서서,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아래에서 기다리고 있는데도, 1분 가까이 고개를 들어 먼 하늘을 바라보며 심호흡을 하는 모습을 보면서 뭉클해지는 기분이었다. 순간 두 아들 얼굴이 떠올랐다. 통일이 올까?

나는 약 10년 전 해외업무 부서에서 북한 관련 업무를 지원했던 적이 있다. 국내 최초로 평양에서 양말을 생산해서 해외로 수출했고, 국내 최초로 북한산 학생가방을 국내에 판매했던 회사에 근무했다.

그러나 나는 아직도 대북사업은 수익성이 낮은 사업으로 판단하고 있다. 상품의 질이나 사업 형태의 문제 때문이 아니다. 신뢰성이 문제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이번 정상회담을 통해서 이런 불신이 걷히길 기대한다. 대통령이 돌아올 때 ‘서울에서 다시 만나요’라는 말을 듣고 싶다.

/조규섭 39·회사원·서울 중구

◈ 분단 반세기 만에 드디어 남북이 만났다. 그 동안 수없이 많은 시행착오를 겪었지만 마침내 남북의 정상이 얼굴을 마주했다. 그러나 내일 당장 통일이 될 것처럼 흥분하는 것은 자제해야 하지 않나 싶다. 일부에서는 김대중 대통령이 마치 통일합의서에 도장을 찍으러 간 듯한 분위기이다. 회담 소식을 전하는 언론도 차분하게 ‘사실’을 전달하기보다는 감정 섞인 메시지로 분위기를 띄우는데 안간힘을 쓰는 듯한 인상이다.

정상회담은 누가 봐도 반갑고 축하할 일이며, 통일의 기틀을 다지는 것이 될 수도 있다. 그러나 우리 스스로가 흥분하고 조급해 하는 것은 결코 바람직하지 않다고 본다. 과거 독일통일의 예로 볼 때, 서로 다른 두 체제의 통합에는 엄청난 비용이 들게 마련이다. 독일 역시 경제적, 사회적으로 엄청난 통일 후유증을 겪지 않았나. 무엇보다도 서로 다름을 인정하는 것이 진정한 화해의 출발점이라고 생각한다.

/서은주 22·대학생·경북 경산시

◈ 김대중 대통령을 필두로 한 방북단 일행이 평양에 당도했다. 벤처기업을 하는 사람으로 무엇보다 회담 성과가 높아져서 경제적 문화적 교류가 본격화된다면, 새로운 의미에서 한국 벤처기업의 발전 가능성이 모색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한다.

세계에서 유례없이 명석한 두뇌를 자랑하는 우리 민족에게 아이디어와 정열을 생명으로 하는 벤처산업이야말로 남과 북을 막론하고 가장 적합한 영역이 아닐 수 없다. 북의 김정일 국방위원장도 중국방문 때 벤처산업에 각별한 관심을 표했다는 보도도 있지 않았던가. 예를 들어 김일성 대학의 우수한 인력과 한국의 대학 및 벤처 기업들이 손을 잡는다면 훌륭한 연구 성과는 물론, 북한을 현재의 경제적 위기에서 구해낼 수 있는 좋은 방법도 찾아 낼 수 있을 것이다.

북한의 우수하면서도 상대적으로 값싼 노동력과 한국의 민족 자본이 결합하면 경제를 통해 아시아를 리드하는 ‘강성 대국’을 같이 만들어 갈수 있을 것이다.

/김창규 웹 시네마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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