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탈북 주부의 서울 생활 “힘든 가사·시댁 갈등… 남한도 똑같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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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00.06.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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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북 정상 회담을 바라보는 보험설계사 이애란(36)씨 감회는 남다르다. 온 가족이 북한을 탈출, 한국에 정착한지 2년 반. 4살짜리 아들을 둔 주부 이씨는 북한 생활 이해를 통해 남북 거리가 좀 더 좁혀지기 바란다며 북한 주부들의 생활을 전해왔다. /편집자



내가 살던 곳은 양강도 혜산이다. 나는 경력 13년의 공학 기사였다. 맥주 발효 상태를 점검하는 게 일이었다. 북한에는 연애와 중매 결혼이 반반인데, 나는 중매로 결혼했다. 최고 신랑감 조건은 ‘군·당·대·기·실’이다. 군대 갔다 오고 당에 입당하고 대학 졸업하고 기술자격증 있고 집이 있는 남자다.

이런 조건은 남한에서도 비슷한 것 같다. 특히 학력과 집(재산)에 대한 기대는 남한이나 북한이나 참 비슷해 보인다. 결혼 안 한 처녀들은 누구나 직장에서 일하고, 주부들은 60% 정도 직장에 나간다.

이 악물고 악착같이 노력해 중간 정도는 살았다. 혜산은 중국과 가까워 북한에서는 평양 못지 않는 유행 1번지로 꼽힌다. 혜산 유행 차림으로 평양가면 ‘옷 잘 입었다’는 소리를 들었다. 일년에 두벌 정도 새옷을 해 입었다. 살기 힘들다고 아우성이지만 그래도 멋내기도 있고 유행도 있다.

직장 나가는데 한심하게 하고 다닐 수 없지 않는가. 머리도 퍼머해서 곱게 빗고, 옷차림에도 신경을 쓴다. 모양이나 옷감에서 큰 유난을 떠는 정도는 아니고, 옷이 대부분 단체복이라 ‘무슨 색 잠바가 인기’ 이런 식이다. 내가 떠나올 때만 해도 폭이 좁고 발목 드러나는 바지, 점박이 천이 유행이었다. 머리는 짧게 잘라 뒤를 살려 퍼머한 ‘삼각머리’가 인기였다.

남한에서도 맞벌이 주부들은 그렇지만, 북한 주부들 삶은 고단하다. 사회주의 국가지만, 가부장주의, 남성우월주의는 사라지지 않았다. 북한 주부의 하루는 오전 5시에 눈 떠 밥을 앉히고 남편 깨우는 것으로 시작한다. 북한에서는 마당이나 복도, 층계 등을 주민들이 함께 관리한다. 그래서 보통 출근 전 청소 일을 하고 간다.

어디 조선 남자들이 집안 일을 하나? 아침에 제대로 일어나길 하나? 아침에 일어나서 밥 앉혀놓고 집안 일하고 출근 준비하다 보면 눈코뜰 새가 없다. 남한에서 보니, 여기서도 남자들 가부장적이긴 마찬가지인 것 같다.

북한에서도 잘 도와주는 남편은 잘 도와주지만, 가사 분담이 남한처럼 사회적인 이슈가 되지는 못한다. 남편 반찬, 남편 밥상도 따로 챙긴다.

사람 사는 건 똑 같아서, 시댁과의 갈등도 남한이나 마찬가지다. 일반 노동자는 방 1~2개짜리 집에서 사는데, 사정이 여의치 못해 시부모와 한 방을 써야 될 때는 갈등이 더 심하게 드러나기도 한다.

나는 원래 수학에 취미가 있었고 숫자와 친했다. 처음 한국에 와서는 호텔 룸 메이드도 했고 신문배달도 했지만 지금은 적성대로 보험설계사로 뛰고 있다. 영어로 된 경제 단어를 몰라 사전 찾아보고 힘들었지만, 이젠 감을 잡아 어떤 복잡한 상품 설명에도 자신이 있다.

아들 철혁에게 책을 열심히 읽어주면서 공부 잘하라는 소망을 키운다. 아이는 내일에 대한 희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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