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상회담을 전후해 북한의 주변 4강(강)과의 관계가 급속히 변화하고 있다. 급변하는 한반도에서 ‘발언권 상실’을 우려한 주변 4강이 전에 없이 적극적 자세를 취하고 있는데다 한반도 주변국에 위상을 강화하려는 북한의 전략적 고려가 맞아 떨어지고 있기 때문이다.

가장 적극적인 움직임을 보이는 나라는 러시아로,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은 러시아 국가원수로는 처음으로 오는 7월 북한을 방문할 예정이다. 취임 후부터 강력한 러시아를 표방해온 푸틴이 G8 정상회담 참석길에 북한을 방문하기로 결정한 배경에는 그동안 4자회담 등에서 소외되어온 러시아가 남북 정상회담 이후에는 한반도 문제에 더욱 소외될지 모른다는 초조감이 깔려 있다. 한·소 수교 이후 한국에 기울었던 러시아는 조(조)·러 우호조약 개정을 계기로 한반도에서 등거리 외교로 방향을 바꿨으며 지난 2월에는 이고리 이바노프 외무장관이 직접 평양을 방문해 신조약에 서명했었다. 이번 푸틴의 북한 방문은 한걸음 더 나아가 과거와 같은 관계회복에 초점이 맞춰질 것으로 예상된다. 그의 평양방문으로 양국은 경제협력의 확대는 물론 실질적인 협력체제로 전환할 가능성이 많다.

김정일의 방중(방중)으로 북한과 중국 간에는 ‘전략적 동반자’ 관계가 복원되었다. 김일성 사망 후 양국은 껄끄러운 관계였으나 작년 김영남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장에 이어 이번 그의 중국 방문으로 예전의 관계가 되살아나고 있다고 할 수 있다. 이는 남북 정상회담으로 한반도에서 미국의 영향력이 더 강화될지 모른다는 중국의 우려와 미국을 견제할 세력을 필요로 하는 북한의 이해가 합치되기 때문이다.

대미(대미) 관계에서도 북한은 종전과 다른 태도를 보이고 있다. 미국의 추가 경제제재 해제 조치에 발맞춰 중·장거리 미사일 시험 및 발사 유예(모라토리엄)를 계속 연장하기로 했으며 남북 정상회담 이후에는 관계개선협상이 본격화될 전망이다. 한때 적극적이었던 북한과 일본의 협상은 소강상태를 맞고 있으나 정상회담 이후 한반도 정세변화에 따라 재개될 것으로 보인다.

북한의 4강과의 관계개선 움직임은 북한이 지금까지의 폐쇄적인 태도에서 벗어나 국제사회에 본격 참여한다는 점에서, 그리고 그것이 한반도 안정에 기여할 수 있다는 점에서 긍정적 영향을 끼칠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북한의 4강과의 급속한 접근은 우리 외교에 또다른 과제를 안길 수 있다는 점에서 보다 세밀한 관찰이 필요하다.
저작권자 © 조선일보 동북아연구소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