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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외작가와 나누는 문학대담 (2) 평론가 우찬제 중국 작가 위화 “스포츠는 젊을수록 좋지만 문학은 절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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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00.06.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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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평론가 우찬제(38) 교수(서강대 국문과)는 87년 신춘문예에 당선된 후 ‘세계의 문화’ 편집위원, ‘오늘의 소설’ 편집위원 등을 지내면서 활발한 비평활동을 펼쳐왔다. 조선일보 신춘문예 소설부문 심사, 그리고 동인문학상 예심 심사 등을 오랫동안 맡기도 했으며, 특히 위화의 ‘허삼관 매혈기’ 해설을 써서 중국 현대문학의 이해를 넓히도록 돕기도 했다.

위화(여화·40)는 중국 제3세대문학을 대표하는 작가다. 그는 이미 두권의 장편 ‘살아간다는 것(활착)’, ‘허삼관 매혈기(허삼관 매혈기)’로 국내에 널리 알려져 있으며, 최근 단편집 ‘내게는 이름이 없다(아몰유자기적명자)’, 중편집 ‘세상사는 연기와 같다(세사여연)’ 등을 냈다(푸른숲). 서울 국제도서전을 계기로 방한 중이다.

▲우=당신의 두 장편을 보면 가장 중국적이면서도 세계적 보편성을 느끼게 한다. 80년대에 쓴 중단편들은 중국의 전통적인 전기소설적 요소, 남미의 매직 리얼리즘, 서구의 기회놀이 실험 등이 다양하게 들어 있다. 장편에서 보는 보편성은 이전의 단편에서 그런 노력이 있었기 때문이 아닌가.

▲여=맞다. 많은 사람들이 내가 쓴 80년대 소설과 90년대 소설이 두 사람이 쓴 것 같다고 말한다. 둘 사이는 마치 계단과 같은 관계다. 진솔한 작품을 쓰려면 절차탁마를 거친 기교와 수련기간이 없으면 안된다. 실험을 거친 후 장편을 썼다.

▲우=당신이 태어난 1960년 한국에는 4·19혁명이 있었고, 문학에는 자유의 이념이 들어오기 시작했다. 60년대 후반 산업화가 진행되면서 문학도 리얼리즘적 입장에서 현실에 대한 관심이 깊어갔다. 70년대 조세희의 ‘난장이가 쏘아올린 작은 공’에서 보듯 본격적인 평등이념이 등장했다. 그후 80년대까지 한국 문학은 분단국 민족문제, 경제적 계급문제에 집중적 관심을 갖는 리얼리즘 작가들이 많이 나왔다. 80년대에는 리얼리즘적 전략 외에도 반대편에 황지우(시)와 이인성(소설)처럼 모더니즘적 노력이 있었다. 90년대에 오면 이념이나 현실로부터 자유로운 신세대 작가들의 상상력이 펼쳐지기 시작한다. 그러나 최근에는 한국 작가들이 현실을 통해 보여줄 수 있는 통찰력을 잃고 있는 게 아닌가 하는 우려가 나오고 있다. 지금 중국은 현실문제를 붙안고 있는 리얼리즘 전략 단계가 아닌가.

▲여=모더니즘은 20세기의 주류였다. 그것이 중국에 들어온 것은 80년대다. 한국에 20년쯤 뒤졌다. 엄격한 의미에서 공산당이 관리하던, 80년대 이전 중국에 문학은 존재하지 않았다. 아마 지금의 북한과 비슷할 것이다. 그것은 문학이라 할 수 없다. 내가 80년대를 그리워하는 이유는 그때가 중국 지식인에게 있어 사상의 자유와 해방을 추구하던 시기였기 때문이다. 80년대가 가장 뼈저리게 가르쳐준 것은 자기의 머리로 생각하라는 것이다. 처음 출현한 것이 참담한 얘기를 써내는 ‘상흔(상흔)문학’이었다. 이것이 2년쯤 끌자, 이번엔 반성적 생각을 깊이 한다는 의미에서 ‘반사(반사)문학’이 나왔다. 과거가 전부 나쁜 것이 아니라 나빴던 것 속에서 아름다운 것을 찾아내자는 경향이었다. 또 2년쯤 후 반사문학이 퇴조하자 작가 한소공(한소공)으로 대표되는 ‘심근(심근)문학’이 등장했다. 뿌리를 찾자는 뜻의 심근문학은 외래적인 것, 내재적인 것을 통일적으로 결합했고, ‘어떻게 중국인 얘기를 쓸 것인가’의 기초를 닦았다.

▲우=심근문학 다음엔?

▲여=이른바 ‘선봉파’로 불리는 전위작가들이 출현한다. 나도 거기에 소속돼 있다고 할 것이다. 선봉파들은 심근문학을 계승하면서 보통 사람의 보통생활을 썼다. 그때 들어 글쓰기에 다른 방식이 생겨난 것이다. 이전에 없던 서술 방식을 고민하기 시작했고, 그후로 80년대가 막을 내리게 된다. 휘황찬란하다고 할 수는 없지만, 80년대 10년간을 통해 우리는 문학이 가져야할 것을 얻었다. 90년대 들어 유파도 없고, 소비성 강한 작품의 시기가 시작된다. 그러나 이것은 70년대에 출생한 작가들의 얘기일 뿐이다. 젊은 작가들은 서술방식이 우리와 확연히 다르다. 그들은 구호처럼 외치는 것이다. 이른바 ‘육체적 글쓰기’라는 것이 있는데, 그들의 소설에는 매 페이지마다 섹스가 들어간다.

▲우=1930년대 한국의 이상(이상)이라는 작가는 ‘20세기의 사람으로 살고 싶으나 19세기적 요소가 나를 억압한다’고 했다. 당신과 중국 문학이 21세기에 예견하는 풍경은?

▲여=중국 잡지·신문에서도 신세기에 관한 토론이 많았다. 하지만 그런 토론은 다음날 신문이 나오자마자 이미 전날 얘기가 시대에 뒤처졌다는 느낌을 준다. 재판이 진행 중인 법정이 있다면, 문학은 판사도 검사도 피고도 원고도 변호사도 아니다. 문학은 기록하는 역할을 맡은 서기다. 서기의 기록이 심판에 영향을 줄 수는 없다. 단 문학은 스포츠와는 다르다. 스포츠는 젊을수록 좋지만, 문학은 절대 그럴 수는 없다.

/정리=김광일기자 kikim@chosun.com

/사진=정경렬기자 krchung@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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