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북 정상회담은 한반도 평화 정착을 위한 획기적인 이정표를 세워야 한다. 그리고 그렇게 될 수 있게끔 온 국민이 최대한 뒷받침해 주어야 한다. 문제는 정부와 국민이 이 역사적인 사태를 어떻게 끌고 나가느냐 하는 기본적인 물음이다. 남북 정상회담은 남과 북을 대뜸 한 데 섞자는 것이 아니라 우선은 상대방의 ‘다름’을 인정하고 그 신뢰 위에서 공존·교류하자는 것이다. 한마디로 각자의 정체성, 차별성, 고유성, 제 정신만은 확고히 견지하면서 상대방과는 평화롭게 잘 지내자는 이야기다. 따라서 이것은 대단히 우수하고도 정교한 두뇌력을 필요로 한다. 상대방을 적대시하지도 않으면서 그러나 너무 빠져버리지도 않는 적절한 자세―. 우리에게 과연 이것이 가능할까?

남북 정상회담이 앞으로 길이 성공적인 열매를 맺기 위해서도 이러한 자질과 능력은 절대적으로 필요하다. 남북 문제는 처음부터 끝까지 이벤트도 아니고, 연극 한마당도 아니고, 잔치나 놀이도 아니기 때문이다. 그것은 어디까지나 치밀한 전략적 사고와 행위만이 풀어낼 수 있는 고차(고차) 방정식이요 비즈니스다. 그러므로 감성과잉이나 정서과잉은 금물이다. 그것을 마치 록페스티벌쯤으로 대하거나 ‘한바탕의 축제’쯤으로 여기는 것도 일을 그르치는 요인이다.

이런 요청에서 본다면 지금 우리 사회의 분위기는 이미 정상회담을 자칫 정서과잉의 자세에서 바라보고 접근하는 듯한 징후를 드러내고 있어 걱정이다. 예컨대 7일치 조선일보 기사를 보자. ‘북한이 뜨고 있다’라는 제목 아래 기사는 이렇게 나와 있다. ‘… 백화점들은 경쟁적으로 북한상품전을 열고 있다… 어떤 회사는 김정일 닮은 사람을 모집하고… 판매원에게는 북한 한복을 입히고… 김정일 모습을 캐릭터화한 머그잔…. ’

우리 한국인들은 남에 비해 흥분하고 들뜨는 습성이 좀 심하다. ‘남북’은 이제 겨우 걸음마는커녕 길듯 말듯한 단계다. 그런데 벌써부터 시집장가나 가는 듯한 분위기와 상징조작이 정상회담을 비즈니스 아닌 ‘축제’로 만들어가고 있다. 우리는 정말 아무도 못 말리는 사람들인가? 나사가 풀리듯, 최면에 걸리듯, 당장 천지개벽이라도 있을 듯이 제 정신을 잃다가는 모처럼의 좋은 일을 그르칠 수도 있다는 점을 명심해야 하겠다.
저작권자 © 조선일보 동북아연구소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