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토록 그리던 조국 땅에서 1년도 못 살고 돌아가시면서도 아버지는 ‘조국에 보탠 것이 없어 미안하다’는 말씀을 남기셨습니다. ”

북한에 억류됐다 귀환한 국군포로 10명 중 손재권(68·사진)씨가 지난 22일 숨졌다. 손씨 부인 어봉녀(65)씨와 딸 순실(30)씨는 손씨 시신이 안치된 서울 원자력병원 장례식장에서 “50년 동안 못 잊던 조국에 귀환하자마자 돌아가신 것이 너무 안타깝다”며 울먹였다.

“작년 3월 26일에 오셨지만 제대로 거동하실 수 있었던 기간은 채 3개월이 안됩니다. 귀환 직후 식도암 판정을 받았거든요. 가고 싶으시다던 제주도도 못 가봤을 정도로 시간이 모자랐습니다. 마지막에는 ‘좀 더 살았으면 좋겠다’고 눈물 지으셨어요. ”

손씨는 94년 조창호 소위 귀환 이후 한국에 돌아온 10명의 국군포로 중 처음으로 숨진 사람이다.

손씨는 6·25 전쟁이 발발한 50년, 대구에서 고등학교에 다니다 입대했다. 그해 11월 평남 덕천군 영원지구 전투에서 중공군의 포로가 됐고, 자강도 강계 포로수용소, 아오지 탄광, 함북 온성 탄광을 전전했다. 결혼해 자식까지 낳으며 40여 년을 살다, 98년 국경 감시가 느슨한 틈을 타 가족과 함께 두만강을 건넜다. 이어 우여곡절 끝에 작년 3월에야 조국의 품에 안길 수 있었다. 조국 귀환 이후 그는 소속 부대였던 8사단에서 하사로 전역해 고향 대구에서 잔치를 벌이는 등 꿈 같은 시간을 보냈다. “항상 ‘조국에 내가 무엇인가 해야 하는데…’라고 하셨어요. 발전된 한국의 모습을 보고 너무 놀라고 기뻐하셨습니다. ” 같은 탈북자인 사위 백명학(30)씨는 이런 장인을 ‘영웅’이라 불렀다. 애국심만큼은 누구보다 강했기 때문이었다.

손씨는 함께 국군포로로 잡혀갔다가 북에서 숨을 거둔 친형 손재인씨의 아들 순진(52)씨 부부를 남에서 만나는 기쁨도 누렸다. 매년 아버지와 작은아버지의 제사를 지내던 순진씨 부부는 작은아버지 손씨가 살아 돌아오자, ‘아버지’라 부르며 돌봐왔다.

하지만 행복은 잠시였다. 북에서 건강을 해친 탓인지 몇 달 뒤 식도암 진단을 받았고, 수술까지 했으나 별 효과가 없었다.

/정성진기자 sjchung@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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