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작년 6월 현대 정주영(정주영) 회장이 수백 마리 소떼를 몰고 판문점을 넘는 모습은 장관이었다. 이 무렵 정 회장은 독일 시사주간지 슈피겔과의 인터뷰에서 ‘현대 기술자들과 북한 전문인력들이 리비아 등 제3국의 현대 건설현장에 함께 배치될 것’이며 ‘북한에 서해안 공단을 조성하고 850개 공장을 유치하는 방안도 협의할 것’이라고 밝히기도 했다. ▶그 후 금강산관광 사업이 시작됐다. 지금까지 1년 반 동안 24만명이나 되는 남쪽 관광객이 금강산을 다녀왔다. 남쪽의 대북(대북) 투자사업은 이처럼 현대가 이끌어왔고 남북 경협사업에 관한 한 현대그룹의 비중은 절대적이었다. 이 같은 현대가 유동성 위기를 맞으면서 대북사업에도 적지 않은 혼선이 빚어질 것만 같다. 기회만 있으면 돈이건 물건이건 무턱대고 ‘퍼부어주어’ 현대의 대북사업은 투명성은커녕 수익성도 도통 따지지 않은 사업으로 소문나 있었으니 말이다. ▶대북사업을 전담하기 위해 현대상선·현대건설 등 8개사가 출자하여 만든 (주)현대아산의 작년 매출액은 716억, 37억원의 순손실을 기록했다. 금강산 개발사업권을 갖고 있는 현대아산은 금강산 관광 대가로 올해 2월까지 매월 800만 달러(96억원)씩을 북한에 제공해왔는데, 3월부터 2005년 2월까지는 매월 1200만달러씩을 입산료 명목으로 북한에 줘야 한다. 모두 9억4200만달러가 되는 셈이다. ▶입산료만 기준으로 할 때 매년 72만명이 금강산을 찾아야 본전이 된다. 그러나 지금까지 금강산을 찾은 관광객수는 고작 24만명이다. 밑져도 보통 밑지는 장사가 아니다. 게다가 해상호텔·콘도·골프장·스키장 등 위락시설, 관광도로를 포함한 SOC투자 등 엄청난 돈을 투입한다는 계획이다. ▶북한 김정일을 적절한 파트너로 생각하느냐는 슈피겔지 기자의 질문에 대해 정주영 회장은 “매우 신뢰할 만한 사람으로 파악하고 있다”고 대답했다. 그런데 그러한 정 회장과 현대를 우리 시장은 요즘 ‘매우 신뢰할 수 없는 기업인과 기업’으로 파악하고 있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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