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의 대미(대미) 외교에 이상징후가 나타나고 있는 것 같아 걱정스럽다. 한국이 오랜 우방인 미국과 멀어지고 있는 반면 중국과는 급속히 가까워지고 있다는 아시아 위크지 최신호 보도는 범상히 넘겨버릴 것이 아니다. 아시아 위크지는 ‘김대중 대통령이 다음달로 예정된 남·북 정상회담을 설명하기 위해 중국에는 이정빈(이정빈) 외교통상부장관을 보내고 미국에는 반기문(반기문) 차관을 보냈다’고 지적했다.

아시아 위크지의 지적이 아니더라도, 김대중 정부가 남·북 정상회담 설명과 관련해 북경엔 외무장관을 보내면서 워싱턴엔 차관을 보낸 것은 외교의 기본 상식으로 도저히 이해할 수 없다는 것이 우리의 생각이다. 정부로서는 나름대로 무슨 사정이 있었는지 모르지만 가장 중요한 우방인 미국을 그처럼 ‘홀대’해도 되는 것인지 납득이 가지 않는다. 정부는 그런 상황이 아니라고 부인하겠지만 정부의 경솔함과 무신경을 탓하지 않을 수 없다. 외교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형식을 지키고 격을 따지는 것이다.

그렇지 않아도 한·미 관계가 심상치 않아 우려된다는 것이 저간의 상황이었다. 노근리 사건 조사를 둘러싸고 시작된 양국관계의 이상징후는 매향리 미군 폭격 연습장과 관련한 현지주민들의 불만 고조와 한·미 행정협정(SOFA) 개정 지연문제로 이어지면서 미묘한 방향으로 전개되고 있다. 이런 판국에 주미(주미) 대사에 국회의원 공천에서 떨어진 인사를 내정한 것은 사정을 더욱 좋지 않게 만드는 결과를 가져올 수 있다. 주미 대사는 되도록 총리 아니면 최소한 장관직을 경험한 인사를 보냈던 것이 그동안의 관례였다. 전직 외교통상부장관을 중국 대사로 보내면서 누가 뭐래도 우리에겐 비중이 훨씬 큰 워싱턴에, 외교는 물론 행정경험이 전혀 없는 인사를 대사로 보내는 것에 대해 미국 정부가 어떤 반응을 보일지 궁금하다.

우리 정부와 클린턴 행정부의 부인에도 불구하고 한·미 양국은 남·북 정상회담 의제 선정을 둘러싸고 견해차이를 보이고 있다는 얘기가 끊이질 않는다. 아시아 위크지도 ‘미국과 일본은 정상회담 의제에 북한의 미사일과 핵무기 문제가 포함될 것을 강력히 원하고 있으나 포함 여부가 아직 확정되지 않았다’면서 이로 인해 한국과 미국의 관계가 벌어지고 있다고 보도하고 있다.

한반도 평화정착을 위해선 미·러·중·일 주변 4강으로부터의 고른 협조가 필수적이다. 김대중 정부는 그 같은 필요성을 인식, 그동안 많은 노력을 기울여온 것도 사실이다. 그렇다 해도 우리의 외교와 안보는 아직은 미국과의 협조를 기축으로 해야 한다. 한·미 관계는 감정이 아니라 이성을 바탕으로 신중에 신중을 기해 이끌어 가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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