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북 정상회담을 위한 실무절차 합의서가 채택됐다. 남북 대표의 5차례 만남에서 상봉과 정상회담을 최소한 2~3차례 하되 필요한 경우 더 할 수 있게 했다. 방북 루트도 공로든 육로든 우리가 마음대로 선택할 수 있게 되었다. 정상회담을 현장중계할 수 있도록 원칙적으로 합의한 것도 바람직한 방향이다.

그렇다고 미진한 내용이 없는 것은 아니다. 회담형식에 있어 ‘상봉’과 ‘정상회담’을 분리하자는 북한의 주장을 받아들인 것이나, ‘역사적인 7·4 남북 공동성명에서 천명된 조국통일 3대 원칙’을 의제의 하나로 수용한 것은 짚어볼 대목이다. 북한이 남한언론의 ‘과거 보도사례’를 들먹이며 취재단 규모를 줄이자는 요구를 받아들인 것도 아쉬운 점이다. 그러나 협상이란 상대가 있게 마련이며, 상대방 의견을 전적으로 무시할 수 없다는 관점에서 그런 문제를 보아야 할 것이다. 더구나 남북은 분단 반세기 동안 전쟁과 대립으로 점철된 역사를 안고 있는 처지인 만큼 큰 덩어리를 보는 것이 중요하다는 생각도 든다.

이 합의로 남북 정상회담은 가시권에 들어섰으며 돌발사태가 없는 한 남북 정상 간의 만남은 이루어지게 되었다. 이와 관련해 우리는 김대중 대통령을 비롯한 대표단에 이것만은 꼭 지키도록 당부를 하고 싶다.

우선 역사적 첫 만남이라는 점에서 북한에 대해 지킬 것은 지켜야 하지만 우리 국민의 자존심에 상처를 입히는 일이 있어선 안되겠다. 비록 우리 대표단은 남북간에 합의된 구체적인 절차에 따라 움직이겠지만 2박3일 동안의 평양 체류기간에 무슨 일이 일어날지 알 수 없다. 상봉과정에서 의전적 문제도 발생할 수 있으며, 정상회담을 둘러싸고서도 예측할 수 없는 일이 벌어질지 모른다. 김 대통령은 갈등소지가 있는 이념적 조형물 등은 방문하지 않겠다고 밝혔지만 ‘안내와 질서’를 북한이 전적으로 맡고 있는 상황에서 북한이 어떻게 나올지 모른다. 그럴 때마다 당당하고 분명하게 처신해야 한다.

아울러 나라 체통이 손상되는 일이 있어서도 안된다. 북한은 정상회담이 열리게 된 지금 이 순간에도 역사적 정통성은 자신들에게 있으며 남한은 ‘미제(미제)의 식민지’라는 인식에서 벗어나지 않고 있다. 그런 인식에 따른 대남전략도 포기하지 않고 있다. 이런 것들을 각별히 유념해서 대표단의 행동은 조심스럽고 신중하고 사려깊어야 한다. 그런데도 회담에 직접 관련이 없는 관료나 일부 인사들이 벌써부터 너도 나도 대표단에 참여하려고 안간힘을 쓰고 있다니 보기에 딱하다. 대표단의 선정도 ‘권위’가 있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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