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로써 말 많으니 말 말을까 하노라. ’― 이처럼 말에 관한 글이나 속담은 수없이 많다. ‘말이 고마우면 비지 사러 갔다 두부 사온다’고 하듯 고운말에 관한 속담도 있지만, ‘말조심’ ‘말실수’ 등 말로 인한 재앙이나 말바꾸기의 어려움을 빗댄 속담들이 대다수다. ‘병은 입으로 들어가고 화(화)는 입으로 나온다’거나 ‘혀가 미끄러지는 것보다 발이 미끄러지는 편이 낫다’는 등 말조심을 강조한 동서양 속담은 부지기수다. ▶그런데도 세상에는 말로써 망신을 사고, 말로써 화근(화근)을 만드는 사람들이 적지 않다. 민주당 김영배(김영배) 고문의 ‘피바람’ 발언은 우발적이고 정치적 목적 없이 했다지만 입장에 따라서는 망언(망언)이고 실언(실언)이며 일종의 공갈 협박으로 들릴 수도 있다. “민주당이 정권을 재창출하지 못하면 엄청난 피바람이 휘몰아 칠 것이다” 운운은 민주당이 그만큼 당할 ‘죄(죄)’를 많이 저질렀다는 것인지 그 반대의미인지 헷갈린다. ▶’피바람’이란 살벌한 광경은 TV 사극(사극)에서나 보아왔다. ‘기묘사화’니 ‘갑자사화’니 하는 조선시대 숱한 사화(사화)는 반대편 파벌의 3족을 일거에 멸하는 피바람을 일으킨 사건들이다. 김 고문이 궁중사극을 많이 봐서 이런 끔찍한 말이 튀어나왔는지 알 수는 없으나, 6선(선) 의원에 총재 권한대행까지 지낸 정치인이 쓰기에는 부적절한 표현이 아닐 수 없다. ▶한나라당은 ‘피바람’이란 말이 북한사람들의 ‘불바다’ 발언을 연상시킨다고 맹비난했다. 94년 남북 실무접촉에서 북한측 단장 박영수는 남측의 송영대 대표에게 “우리 주체의 나라 북조선은 전쟁의 벌집을 터뜨리려는 남조선과 미국의 책동을 결코 수수방관 않겠다”며 “전쟁이 일어나면 서울은 불바다가 될 것이고 송 선생도 살아남지 못할 것”이라는 극언을 서슴지 않았다. ▶북쪽의 ‘피바다’라는 가극도 섬뜩하지만 서울을 불바다로 만들겠다는 발언은 가공할 공갈 협박이 아닐 수 없다. 김 고문의 표현이 뭉쳐보자고 한 말이라고는 믿지만 왕조시대도 아닌 민주사회에서 ‘피바람’ 운운은 예사로 넘길 일이 아니다. 속담에 ‘쌀은 쏟고 주워도 말은 하고 못줍는다’라고 했던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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