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무현 대통령과 부시 미국 대통령이 엊그제 전화통화에서 ‘한·미 동맹의 중요성’에 인식을 같이한 것은, 현재 한반도 상황을 바라보는 안팎의 불안 심리를 가라앉히는 계기가 될 수 있다는 점에서 좋은 출발이다.

지금 우리에게 닥친 안보 및 경제 위기감의 바닥에 깔린 것은 다른 무엇보다 비틀리고 꼬여가는 듯한 한·미 동맹관계에 대한 우려와 불안이었다. 이런 점에서 노 대통령이 이라크 개전(開戰) 문제로 외교적 어려움을 겪고 있는 부시 대통령에게 이라크전(戰) 지지 의사를 밝힌 것은 그 의미가 적지 않다.

국내에도 반전(反戰) 여론이 있지만 그보다는 한·미 동맹이 중요하다는 판단을 내린 것이며, 이는 나름대로 고심(苦心)의 과정을 거친 합리적 결단이라고 볼 수 있다.

이제 중요한 것은 이번 ‘노·부시 전화 회담’을 통해 오랜만에 마련된 한·미관계의 긍정적 변화의 싹을 키우고 확대하는 일이다. 그러기 위해선 한·미 양국이 하루빨리 북핵 문제에 관한 본격적인 협의에 착수해 공통의 해법을 내놓고 이를 실천하는 게 필요하다.

이 같은 맥락에서 노무현 정부가 대통령 취임 전에 주장했던 ‘미·북 중재론’이나 ‘미·북 직접대화’만을 고집하기보다는, 미국측이 제시한 ‘다자(多者) 대화 구도’를 받아들일 의사를 밝히고 있는 것도 긍정적 변화다. 이는 현실적으로 실현 가능한 정책들을 찾는 과정에서 발생하는 어쩔 수 없는 적응 과정이기도 하다.

문제는 지금부터다. 노 대통령과 부시 대통령이 나눈 ‘말(言)’에 담긴 신의를 지킬 수 있도록 한·미 양측이 함께 노력해야 한다. 두 정상은 “강력한 한·미 동맹을 유지해야 한다”고 강조했지만, 그간 두 나라 지도층과 국민들 사이에 형성된 감정의 골은 말 한마디로 메울 수 있는 정도를 넘어섰다. 불필요하고, 또는 무심결에 상대방을 자극할 수 있는 언행을 삼가는 게 그 시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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