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리품 팔고 호주머니 털어 모처럼 공연장을 찾은 관객이 연극에 요구하는 건 우선 재미일 것이다. 좀더 욕심을 부려 본전 뽑기를 고집하는 관객이라면 그 위에 감동을 요구할 것이다. 오랜만에 재미와 감동을 한목에 안겨주는 연극을 만났다. 극단 미추의 ‘춘궁기’(박수진 작, 강대홍 연출,29일까지 문예회관 대극장 (0351)879-3100)가 바로 그것이다.

실제로 연극의 어디에도 초근목피로 연명해야 했던 지난 시절 그 보릿고개의 절량 위기는 등장하지 않는다. 그럼에도 기성세대 몫의 그 비극적 단어를 젊은 작가가 굳이 제목으로 빌려쓴 것은 육신의 양식이 아닌 영혼의 양식이 바닥나 버린 우리네 마음의 흉년 풍경을 드러내기 위함일 것이다.

강원도 산골 마을 토박이들의 대사 속에 여러 지방 사투리를 뒤섞어놓은 것에서도 작가의 상징적 의도는 엿보인다.

한 마을을 한반도 전체의 축소판으로 설정함으로써 유비(유비)의 효과를 극대화하려는 작의일 것이다. 결국 이 연극이 보여주는 한 마을의 비극은 한반도의 비극이요, 한민족의 비극이다.

무대 위에는 변변한 장치 하나 없이 두 개의 솟대만이 달랑 세워져 있다. 강원도와 함경도에 각각 세워진 두 개의 솟대를 패러볼라 안테나삼아 분단 비극으로 이산의 운명을 살아가는 노부부는 대화를 나누고 교감을 유지한다. 전근대의 민속신앙 유물인 솟대에 첨단 기능이 부여됨으로써 무대에서는 서로 동떨어진 시간과 공간들이 유기적 연관을 맺는다. 그리고 자칫 산만해지기 쉬운 서사 골격에 통일성과 논리성이 강화된다.

어느 날 강원도 산골에 울린 사냥꾼들의 총소리에 의해 큰할매의 해묵은 상처는 그예 또 덧나고 만다. 혼미한 상태에서 큰할매는 이북의 남편과 월남 당시 죽은 어린 아들의 환영을 만난다.

도저한 비극 체험은 신통력을 부르는 것일까. 접신의 경지에서 큰할매는 자연을 파괴하는 무분별한 개발과 극심한 가뭄으로 황폐해진 농촌, 그 농촌으로 상징되는 한반도의 불행이 희생 제물을 요구함을 알아차린다.

두 제물이 폭력에 쫓기기 시작한다. 자유와 먹을거리를 찾아 북한을 탈출한 김노인의 손녀 분희는 이남의 큰할매에게 가지 못한 채 중국과 러시아를 전전하며 쫓겨다닌다. 기우제의 제물감인 사슴은 사냥꾼에게 쫓기고 마을 사람들에게 쫓겨 산속을 헤맨다. 무고한 희생을 막기 위한 큰할매의 필사적인 노력이 전개된다. 산불이 불러들인 비 덕분에 사슴은 가까스로 희생을 면하지만 분희는 끝내 이역에서 비참한 최후를 맞고 만다.

무겁고도 절박한 주제는 순발력 있는 대사와 해학미 넘치는 농경언어들의 도움에 힘입어 승화의 과정을 거친다. 웃음을 동반한 울음이 재미 위에 감동을 얹음으로써 오히려 민족의 비극을 다룬 주제는 긴 여운을 끈다. 특히나 연극의 결말부에서 무대를 그득 뒤덮은 진홍빛 피륙의 격렬한 율동으로 표현되는 산불과 청량한 소낙비 장면은 압권을 이룬다. 빛과 소리의 효과가 주는 그 강렬한 인상을 가슴에 담고 극장 문을 나서다가 문득 한 가닥 의문을 느낀다. 내내 동일시되어 평행을 이루던 희생 제물 분희와 사슴의 운명을 왜 끝에서 합치지 않고 죽음과 삶으로 갈라놓아야 했을까 하는.

/윤흥길·소설가·한서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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