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우리 경제는 총체적 위기국면으로 치닫고 있다. 외환시장에서 원·달러 환율이 연일 급등하면서 기업과 개인들이 ‘달러 사재기’에 나서고 있다. 경제의 문외한들까지 5년여 전 외환위기의 악몽(惡夢)을 떠올리기 시작하고 있다.

여기다 바닥이 보이지 않는 주가폭락 사태와 무역수지 적자 전환, 외국인들의 대한(對韓)투자 기피, 노사분규 악화 가능성을 비롯해 무엇 하나 희망적인 조짐이 보이지 않는다. 기업인은 기업인끼리, 서민들은 서민들끼리 모였다 하면 “IMF 때와 별반 다르지 않다”고 귀엣말을 나누고 있다.

특히 주목해야 할 사실은 세계적인 달러화(貨) 약세로 다른 나라 통화들이 강세를 나타내고 있는 것과는 달리, 유독 원화 가치만 떨어지고 있는 점이다. 이것은 한국 경제에 대해 국제금융시장이 보내는 분명한 경고 메시지이다.

국제금융시장이 한국 경제와 원화를 차가운 눈길로 쳐다보는 한국의 특수사정은 두 가지다. 하나는 북핵(北核)이고 또 하나는 SK분식회계 문제다. 이 중에서도 한국이 독자적으로 제어(制御)하기 힘든 측면이 있는 북핵과는 달리 SK 문제는 우리 경제와 기업들의 구조적인 치부(恥部)를 드러냈다는 점에서 더 심각하게 받아들여야 할 사태다.

국내 3위의 대기업 집단이 1조5000여억원 규모의 분식회계를 자행했다는 것은 한국경제와 기업들 전체의 대외신인도에 결정적 타격을 가한 사건이다. 외환위기 이후 기업 지배구조 개선과 투명성 제고를 위한 개혁의 성과를 자랑해온 결과가 고작 이것이라니 허탈하기까지 하다.

국제금융시장이 “한국 기업들의 장부는 믿을 수 없다”며 불신하는 상황에서 국내기업들이 해외시장에서 차입하는 길은 막힐 수밖에 없다. 원화 가치 폭락과 달러 사재기는 외화조달 창구가 막혀가고 있는 한국 기업들의 궁색한 처지를 보여주는 증거다.

여기서 최근 몇 차례 한국경제에 경고를 보냈던 무디스가 한국의 국가신용등급을 떨어뜨리는 일이라도 벌어진다면 제2의 외환위기라는 최악의 시나리오가 현실화될 가능성마저 있다.

이미 한국경제에는 위기를 알리는 조기 경고음이 울린 상태다. 정부와 기업은 물론 국민들도 이제는 “이라크 전쟁이 조기에 종결된다면…”이라는 막연한 기대를 버려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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