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무현(盧武鉉) 대통령이 대북정책과 관련해 ‘미국과의 이견(異見)’을 공개적으로 천명하고 있어 그 배경과 앞으로 어떻게 하려는 것인지에 관심이 모이지고 있다.

노 대통령은 9일 민주당 지도부와의 만찬에서 다음과 같은 요지로 말했다고 송경희 청와대 대변인이 전했다.

“한국정부의 대북정책에는 98년 이래 변화가 없었다. 전 세계가 지지했었다. 특히 2001년 9·11 이후 북에 대한 미국 태도가 달라지기 시작했다. 달라지니까 남·북관계에 영향을 미치게 됐다. 한·미의 입장에도 그런 상황에 한국정부가 빠져 버린 것이다.

공개적으로 전쟁에 반대를 하지 않으면 연일 전쟁 불안감이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면 경제가 어찌 되겠는가. 한국정부가 명확하게 전쟁에 대한 반대를 하는 것으로(‘반대를 해서’란 취지인듯) 폭격 가능성과 불안감을 줄이려고 했다. 그런 태도를 바꾸지 않으면서 미국과의 공조를 하겠다.”

참석자들은 또 노 대통령이 북핵 문제에 대해 한·미 입장이 똑같을 수 없는 상황에서 겉으론 이견이 없는 것처럼 쉬쉬하며 가느냐, 공개적으로 이견을 나타내느냐는 선택의 문제가 있는데 세계 여론에 호소하기 위해서는 공개적으로 이견을 나타내는 것이 낫다는 판단을 밝혔다고 전했다.

노 대통령의 이 같은 언급은 현재의 한·미관계와 현 정부의 대미(對美)정책에 대해 끊임없이 제기되는 우려의 목소리들에 대해 내놓은 대답이다. 미국과 다른 것은 공개적으로 다르다고 천명하고 해답은 그 후에 구하자는 취지인 것으로 보인다.

이런 자세는 김대중 전 대통령과는 사뭇 대조적이다. 김 전 대통령도 대북 제재 반대 등 근본적인 대북정책에 있어서는 노 대통령과 같은 기조였지만, 노 대통령처럼 공개적으로 이견을 강조하지는 않았다. 그는 오히려 한·미 간의 다른 점보다는 공통점을 강조하는 방식으로 양국 간 공조를 유지하면서 자신의 노선을 관철시키려 했다. 9·11 이후에도 마찬가지였다.



노 대통령은 그러나 김 전 대통령과 같은 방식으로 봉합될 수 있는 단계는 이미 지났다고 보는 것 같다. 또 입장 천명 방식이 오히려 협상에 더 유리할 수도 있다는 판단을 하고 있다는 게 참모들의 설명이다.

한 참모는 “노 대통령은 실용주의자다. 결코 이상적으로 미국과 다르다는 목소리를 내는 것이 아니다. 다를 수밖에 없는 것을 감추지 않고 다르다고 명확히 해야 오히려 협상이 가능해진다. 미국과 앞으로 협상이 이뤄질 것이고, 내부적으로는 그런 일들이 진행되고 있다”고 말했다.

그러나 노 대통령측의 기대대로 한·미관계가 굴러갈지는 아직 판단하기 힘들다. 미국 전문가들은 오히려 미국이 노 대통령의 이런 식의 접근보다는 ‘한·미간 불화(不和)’상태를 그대로 노출시키려 할 가능성이 더 많다고 지적한다.

이처럼 양국 간 이견이 공개리에 표출된 상태에서는 한·미 양자협의나 한·미·일 대북정책조정그룹(TCOG) 회의에서의 대북정책 조정작업이 순탄치 않을 것이라는 지적도 있다.

당국자들은 그렇지만 “대통령의 발언은 아직 정부 실무차원에서 전혀 논의되지 않았다”고 말했다. 원칙론만 제기됐을 뿐이지 구체적인 내용이 나온 것은 아니라는 얘기다.

당장 이달 말이나 4월 초로 예정된 윤영관(尹永寬) 외교통상부장관의 방미, 4월 중순 딕 체니 미국 부통령의 방한, 5월쯤 이뤄질 노 대통령의 방미 과정에서 한·미 간 대북정책을 둘러싼 이견이 어떻게 ‘공개적으로’ 조율될지 주시된다.
/ 權景福기자 kkb@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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