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북 정상회담 합의는 벌써부터 다양한 화제와 기대를 불러와 바야흐로 백가쟁명의 양상이다. 이 모든 시중의 화제와 논란들은 이번 정상회담이 남·북관계의 새 전기를 마련하기 바라는 국민의 기대가 잠재되어 있기 때문일 것이다. 정부와 회담 준비팀들은 이같은 국민의 기대에 부응하도록 신중하고 차분하게 준비해야 할 것이다. 만에 하나라도 성급한 결과주의나 실적주의에 쫓겨 큰 틀을 흐트러뜨리거나 시행착오에 빠지는 일은 엄중히 경계해야 할 것이다.

이 점과 관련해 우리는 작금 일부 정부부처의 조급한 움직임을 보고 심각한 우려를 갖게 된다. 반세기 이상의 긴 분단사에 비추면 이번 정상회담 합의는 이제 겨우 시작에 불과한데 벌써부터 북한특수가 어떻고 경협과 지급보증이 어떻고 하며 정부내 거의 모든 부서가 저마다 한마디씩 거들고 다투어 한건씩 내세우는 모습은 정말로 보기가 민망하다. 이것은 흡사 대북사업을 두고 부처간 한건주의 경쟁이라도 벌이는 것처럼 필사적이다.

아직 의제도 안 정해진 중대한 회담을 앞두고 모든 관련부서가 미주알 고주알 현실성과는 상관없이, 저마다 경쟁적으로 언론에 발설하는 것은 분명 문제가 있다. 그것이 농업협력이든 석탄지원이든, 사회간접자본 건설지원이든 모든 협력사업은 우선 상대가 엄연히 있는 사업이다. 우리만의 생각과 독단적 판단만으로는 어떤 협력사업도 순조롭기 어렵다. 오히려 북한을 불필요하게 자극해 본래의 협력취지를 손상할 수도 있다.

대북사업들은 예측이 어려울 만큼 방대한 재원을 전제로 하고 있고 거의 대부분은 국민세금과 연계되어 있다는 사실도 간과해서는 안 된다. 때문에 아무리 남·북 정상회담이 경제협력을 주의제로 삼게 될지라도 모든 정부부처가 섣부른 실적경쟁을 벌이는 모양은 지양해야 한다. 향후 회담과 협의 과정에서 논의될 수 있는 모든 문제들은 우선 내부적으로 충분한 협의와 조정을 거쳐야 하고 재원을 포함한 모든 사전적 또는 사후적 연관문제들을 미리 종합적으로 검토한 뒤에 신중하게 결론내려도 결코 늦지 않다. 그런 내부적 결론을 얻을 때까지는 제발 미리 설익은 아이디어 경쟁을 자제해야 할 것이다. 대북 협력사업은 장기적 안목에서 양쪽의 이익에 부합하고 남북이 함께 감당할 수 있는 사업부터 차근차근 실행에 옮겨야 한다.

정상회담 한번 거론했더니 마치 곧 무엇이 성취될 듯이 부처마다 한건주의로 법석을 떠는 남쪽의 행태를 보면서 빙그레 웃고 있을 북쪽의 얼굴들에 우리가 오히려 민망해진다.
저작권자 © 조선일보 동북아연구소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