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 정부의 최우선 과제는 두말할 필요도 없이 ‘북핵’ ‘대미관계’ ‘경제’였다. 그런데 이 세가지 불안 요인들이 우선 순위에 따라 해결되는 방향이 아니라 서로 상승 작용을 일으키면서 우리를 덮쳐오고 있는 것 같은 우려를 낳고 있는 것이 오늘의 상황이다.

북한은 이제 폐연료봉 재처리라는 ‘휘발유에 불지르기’만을 남겨놓았고, 미국은 폭격기 증강 배치로 대응하고 있다. 동해 공해상에서 양측 군용기가 충돌 일보전까지 간 것은 한반도 위기가 어디까지 와 있는지를 상징적으로 보여준 사건이었다.

버팀목이 돼야 할 대미관계는 휘청거리고 있다. 한국의 촛불시위와 좌파적 인사들의 남북공조 주장, 미국의 배신감과 혐한(嫌韓) 감정 확산에 이어, 인계철선 역할을 하던 휴전선의 주한미군이 후방으로 빠지고 일부는 감축까지 될 것이란 보도가 나오고 있다.

주한미군이 이미지 개선을 위해 ‘좋은 이웃’ 프로그램을 실시한다는 소식은 역설적으로 위기에 처한 한·미동맹의 현주소를 보여주는 것이기도 하다.

국제 사회는 한국의 위기에 민감하게 반응하고 있다. 신용등급전망이 내려가고 서울 주식시장에서 외국인들이 매도세나 관망세로 돌아섰다. 방한하는 외국인 숫자도 줄고 있다. 외국투자자들의 이같은 불안한 시선이 어느 순간에 한국 경제에 폭탄이 돼 날아올 수 있다는 것은 우리가 이미 경험한 바 있다.

주가급락, 물가불안, 투자위축, 소비급랭 등 우리 경제엔 완전히 적신호가 켜졌다. 그런 가운데 검찰의 SK 수사, 공정거래위의 6대 그룹 일제 조사, 각종 시민단체의 잇단 기업 고발 등이 연속적으로 이어지고 기업은 얼어붙고 있다.

시국(時局)의 3대 위기가 이처럼 매일같이 불거지는데 국민들이 책임있는 당국자로부터 믿음직한 설명을 듣지 못한 것이 벌써 두달이 넘었다.

새 정부가 출범한 지 얼마 안돼 과도기의 혼란은 있을 수 있다. 문제는 새 정부의 우선 순위에서 나라의 존망이 걸린 이런 문제들이 과연 첫머리에 올라있느냐는 것이다.

대통령직 인수위부터 지금까지 두달여간 새 정부는 북핵, 대미관계, 경제 문제를 놓고 고민하고 동분서주하는 모습을 보여주기 보다는 ‘개혁성’을 내세우기 위한 지엽말단적 조치들을 홍보하는데 더 힘을 쏟은 게 아니냐는 것이다. 이대로 가면 국민들의 불안감이 커지고 그것이 또 위기를 키우는 악순환 마저 벌어질 우려가 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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