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대중 대통령의 ‘총선 후 북한특수(특수)’발언과 관련, 자금조달문제가 논란이 되자 청와대 수석들이 직접 해명에 나섰다. 그러나 이 역시 새 문제를 야기하고 있다. 쟁점이 되고 있는 자금조달문제에 대해 이들이 제시하는 방법은 세 가지다. 첫째는 대외경제협력기금(EDCF), 남북교류협력기금, 한국국제협력단(KOICA) 자금 등 우리가 확보하고 있는 자금을 북한에 지원하는 방안이다. 둘째는 일본의 공적 원조자금(ODA), 대일청구권자금 활용방안이다. 셋째는 국제통화기금(IMF), 세계은행(IBRD), 아시아개발은행(ADB)으로부터 저리융자를 받는 방법이다.

이런 방법들이 소기의 성과를 거두려면 북한이 빌리거나 지원받는 돈을 분명히 갚을 수 있다는 보장이 전제돼야 한다. 그러나 북한은 그럴 능력이 전혀 없다. 그런 북한으로부터 보장을 받는다는 것은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며, 설령 빌린 자금을 철광 등 원자재로 갚기로 북한이 약속한다고 해도 현재의 북한수송체계나 채굴능력 등으로 볼 때 약속이행이 쉽지 않다. 그렇다면 정부가 말하는 ‘북한특수’는 허수에 불과하다.

자금 조달방법 자체에도 문제가 많다. 우리가 지원할 수 있는 자금 가운데 개도국에 지원하는 대외경제협력기금 대부분이 이미 대외적으로 약속이 되어 있으며 한국국제협력단 자금 역시 해외봉사단 파견 등에 쓰이는 것으로 전용이 쉽지 않다. 아직 가능성도 점쳐지지 않은 일본의 개발원조자금이나 청구권자금을 우리가 운위하는 것은 ‘김칫국 마시는’격이다. 일본과 북한의 국교가 언제 수립될지도 모르는 상황에서 국교수립의 대가로 나오는 청구권자금을 우리가 왈가왈부하는 것은 경우에도 맞지 않는다. 세계은행 등을 통한 자금융자는 테러지원국인 북한으로서는 받을 수 없으며, 설령 받는다 해도 한국정부의 지급보증을 요구할 개연성이 크다.

이 점에서 경제원리에도 맞지 않고 현실적으로도 많은 문제점을 안고 있는 ‘북한특수’를, 그것도 선거운동기간에 대통령 비서들이 나서서 앞질러 낙관하고 장담하는 태도는 온당치 않다. 이에 대한 대가로 북한이 확실한 개혁·개방을 한다고 사전에 약속한다면 그것은 해볼 가치가 있다. 그러나 우리가 보기에 북한은 우리가 주는 ‘과실’을 거저 따먹을 가능성이 많다.

동·서독이 대립했을 때 서독은 차관을 제공하면서 철저한 ‘대가’를 요구했다. 지난 83년과 84년 거액의 차관을 제공하면서 동독 국경지대에 설치된 5만4000개의 자동발사장치의 제거를 요구해 성공했으며 아울러 동독인들의 서독방문 조건 완화 등 11개의 화해조치를 받아냈다. 그런 조건도 없이 ‘북한특수’가 논란되는 것도 문제지만 주무부처도 아닌 청와대 수석비서들이 전면에 나서는 것도 전례없는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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