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일이 평양 중국대사관을 방문한 데 이어 외상 백남순이 중국을 방문하는 등 올들어 북한 당국자들의 중국방문이 이어지고 있다. 작년 탕자쉬안(당가선) 중국 외교부장의 북한방문에 대한 답방형식으로 중국에 간 백남순은 탕 부장은 물론 주룽지(주용기) 총리를 만나 ‘전통적인 우의’를 발전시키기로 했다. 이는 김일성 사망후 껄끄럽던 양측관계가 정상화되었음을 의미하며, 북한에 대한 중국의 지원이 강화될 것으로 보인다. 중국은 올해부터 무역 및 경제협정을 새로 체결해 앞으로 5년간 매년 5억 달러 상당의 원유와 코크스, 식량을 북한에 지원하기로 한 것으로 알려졌다.

김일성 시절엔 5년마다 이 같은 협정이 정례적으로 체결되었었으나 최근 들어서는 협정체결 자체가 불투명했었다. 주룽지는 백을 만난 자리에서 “양국이 주요상황에서 의견을 같이해 기쁘다”고 말할 정도로 만족감을 나타냈다고 한다. 지난 18일에는 또 천지핑(진기평) 중국공산당 정법위 부비서장을 단장으로 한 당 실무대표단이 북한에 갔다. 작년 5월 북한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장 김영남(김영남)의 중국방문 이후 중국공산당과 북한 노동당은 실질적인 관계를 회복해 북한측이 3차례, 중국측이 2차례 대표단을 파견했다. 백남순의 중국방문은 북한과 중국간의 당(당)적 교류가 정상화된 데 이어 정부차원에서도 관계가 과거수준으로 회복되었음을 나타낸 것이다.

북한이 최근 들어 중국과의 관계개선을 서두르는 것은 지속적인 경제지원을 확보하겠다는 의도와 함께 올해부터 본격화할 미·북 회담과 일·북 회담에 대한 사전 정지작업의 성격을 갖는다. 중국과의 전통적인 관계를 회복함으로써 미·북 회담과 일·북 회담에 대한 중국의 이해를 구하고, 그러한 기반 위에서 미국 일본과의 회담을 본격적으로 추진하겠다는 계산인 것이다. 일·북 회담은 일본인 납치의혹이 큰 걸림돌로 돼 있기는 하지만 이르면 연내수교에 대한 기본골격을 합의할 가능성이 있는 것으로 전문가들은 보고 있다. 일본과의 관계가 진척되면 미국과의 협상도 빨라질 공산이 크다.

북한은 기본적으로 남북관계 개선은 우회한 채 북경을 거쳐 워싱턴과 도쿄로 가려 하는 것이다. 그런데도 현정부는 북한이 미국 등과 관계를 개선하면 할수록 그것은 우리에게 유리하다는 인식이다. 기대는 좋다. 그러나 아전인수식 인식은 금물이다. 지금까지의 상황으로 보아 북한이 대중(대중)외교 대미·일외교를 강화하는 것은 한국의 존재를 외면하는 의미가 강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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