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북한의 지휘자가 평양과 서울을 교대로 방문해 남북 연합교향악단을 지휘하는 음악제 일정이 발표됐다. 남북 합동음악회는 그간 국내외에서 몇 차례 가졌으나 남한의 금난새, 북한의 김일진 같은 유명 지휘자들이 오가는 교차적 성격은 광복 후 처음인 만큼 남북 문화교류 차원에서 의의는 있다. 관계 정상화에 앞서 예술이나 스포츠 교류가 선행되어 온 국제관례로 볼 때도 이번 행사는 음악이라는 매개체를 통해 남북화합을 촉진하는 물꼬를 틀 수 있다는 점도 부정하지 않는다.

그런데 공연기획사 발표에 의하면 “공연대가로 북한에 100만달러(약 12억원)를 지급키로 했다”고 한다. 남북이 문화교류와 화합차원에서 교차음악회를 갖는데 왜 남한측이 북한에 거액의 ‘대가’를, 그것도 현금으로 주어야 하는지 알 수가 없을 뿐더러, 상호주의 원칙에도 위배된다. 더욱이 이번 음악제는 민간단체가 상업적인 목적으로 기획한 것임에도 개런티·항공료·숙박비·일당 등 통상경비 외에 100만 달러라는 ‘웃돈’을 얹어준다는 것은 공정한 계약이라고 보기 어렵다. 민간차원의 공연까지 돈을 주어야 성사된다면 그것은 사리에도 맞지 않는 일이며 앞으로의 문화교류에도 좋지 못한 선례를 남길 것이다.

더욱 한심한 일은 정부가 이런 ‘말도 안 되는’ 계약조건을 알고도 지난해 4월 이를 ‘협력사업’으로 승인했다는 점이다. ‘햇볕정책’을 지속해 온 이 정부는 어떤 방법으로라도 북한을 만족시켜주려는 계산일지 몰라도 이런 발상은 우리 국민과 문화인들의 자존심을 외면한 처사이며, 그야말로‘구걸교류’나 다름없는 행위다. 북한이 경제적으로 어려우니 도와야 한다고 해도 인도적인 차원에서 식량이나 생필품을 지원하는 것은 몰라도 뜯기듯이 돈을 주는 것은 창피스러운 일이다.

금강산 관광 등 모든 남북사업을 총괄하는 북한의 아태평화위원회가 방문이나 교류 등 매건마다 ‘뒷돈’을 요구하고 있다는 것은 공공연한 비밀이다. 이번 음악제도 그런 관례(?)의 하나라고 볼 수도 있다. 그런데 문제는 남한의 사업가나 관계자들이 공공연히 ‘뒷돈’을 주고서라도 사업을 성사시키지 못해 안간힘을 쓴다는 데 있다. 기업인들은 말할 것도 없고, 공중파 TV 3사가 경쟁하듯 북한관계 프로그램을 방영하는 것도 뒷거래 없이는 불가능하다는 것이다. 그런데도 북한은 돈을 받아 챙기면서도 어떤 가수는 안 되고 어떤 노래는 빼야 한다는 등 횡포를 부린다니 이야말로 간(간) 떼주고 따귀맞는 꼴이다. 이번 음악제도 기업들의 협찬과 투자로 100만달러의 ‘웃돈’을 모았다지만 주머니돈이 쌈짓돈이기는 매한가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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