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무현 대통령이 어제 취임사에서 밝힌 대북·대미 정책의 기조(基調)는 일단 긍정적인 출발이라고 볼 수 있다. ‘평화번영 정책’이라고 명명한 대북정책에서 대내외적 투명성을 강조한 것이나, 북한의 핵개발을 한반도와 세계 평화의 중대한 위협이라고 규정하고 북한에 대해 ‘핵 보유’와 ‘체제안전 및 경제지원’ 중 하나를 선택하라고 촉구한 것도 주목할 만한 진전이다.

그리고 “한·미 동맹을 소중히 발전시켜 나가겠다”고 다짐한 부분도 노 대통령의 취임사에 반드시 포함되어야 하는 적절한 내용이었다.

이제 중요한 것은 취임사에서 천명한 이런 기조들을 실천에 옮기는 일이다. 만약 노 당선자가 실제 정책이나 발언 등에서 취임사와는 사뭇 다른 노선을 택할 경우 자칫하면 국제사회에서 ‘신뢰의 문제’가 제기될 수 있다는 점을 유념해야 한다.

이번 취임사에서 노 대통령이 강조한 것 중 하나가 ‘개혁’과 ‘통합’이었다. 이 중에서도 특히 “대통령부터 야당과 대화하고 타협하겠다”는 노 당선자의 말을 주목한다.

역대 대통령들은 한결같이 취임 초기에는 야당과 협력하겠다고 다짐했지만, 번번이 그 약속을 지키지 않았다. 노 대통령이 이 같은 악순환의 고리를 끊어 줄 것을 기대한다. 그리고 여야(與野) 협력과 국민통합을 이루려면 다른 누구보다 노 대통령이 먼저 ‘반대편의 입장’에서 생각해 보고 양보하는 자세를 보여야 할 것이다. 한국 정치현실에서 힘을 가진 쪽은 대통령이기 때문이다.

노 대통령이 취임사에서 가장 역설한 부분이 “반칙과 특권이 용납되는 시대는 끝나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것 역시 청와대를 비롯한 권력 중심에서 먼저 모범을 보여야 한다.

지난 10년의 역사만 봐도, 일반 국민들의 가슴을 멍들게 했던 대표적인 ‘반칙과 특권’은 바로 권력이 저지른 비리들이었다는 점을 기억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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