빅터 차
/미국 조지타운대 교수·국제정치

내일 16대 대통령으로 취임하는 노무현 당선자가 2008년 퇴임할 때까지 고민하게 될 가장 중요한 대외정책은 북한이 아니라 미국과의 동맹이 될 것이다. 역사적인 독특한 징후들이, 당장은 아니더라도 주한미군의 변화가 불가피하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기 때문이다.

지금까지 주한 미 지상군은 북한 침략을 방어하고 이를 억제하는 데 성공했다. 그러나 이로 인해 전체적인 미국의 동아시아 전략에서 주한미군 같은 맞춤형 전력의 필요성은 감소됐다. 동시에 한국군은 50년 전과는 달리 강하고 능력있는 존재로 성장했다.

그리고 햇볕정책은 미군에 대한 부정적 이미지라는 예기치 않은 결과를 낳았다. 또한 지나치게 성공적인 정책이 주한미군을 덜 반가운 존재로 만들었고, 다른 한편으로는 정책의 실패가 희생양을 요구했는데, 주한미군이 그 준비된 목표가 된 것이다. 미국 안보전략에 관한 큰 흐름도 변화를 예고하고 있다. 미국 국방부 전문가들은 10만명에 이르는 아시아의 미군 전략을 시대착오적인 것으로 간주하고 있다. 전쟁 수행방식의 혁명, 특히 정밀성을 갖춘 장거리 폭격 능력들이 전 세계에 전진배치된 미군의 존재방식에 대한 변화를 가능케 하고 있다.

만약 한국인들이, 미군이 한반도에 너무도 편하게 주둔하고 있는 만큼 미국이 자신들의 이익 때문에라도 엄청난 변화를 꾀할 수 없다고 생각한다면 이는 정말 잘못된 것이다.

한국 내에서 ‘양키 고 홈’ 구호가 등장하고, 미국 국기인 성조기가 불타고 미군이 괴롭힘을 당하는가 하면, 한국의 젊은층이 부시 미국 대통령이 김정일보다 더 위협적이라고 주장하는 것 같은 일은 워싱턴에 실질적인 영향을 주고 있다.

미국 의회 청문회나 주요 신문의 오피니언 난을 보면 동맹에 대해 고마워하지 않는 한국에 대한 진정한 분노가 담겨 있다. 어떤 제국주의적 동기도 없는 미국이야말로 이처럼 환영하지 않는 주재국에서 그 군대를 철수시킬 것이다.

럼즈펠드 미 국방장관이 최근 주한미군의 변화 가능성을 언급한 것은, 현재 워싱턴에서 장기적인 한·미동맹에 관한 심각한 재검토 작업이 진행되고 있음을 시사하는 것이다.

지난번 한국 대통령 선거에서 보여준 반미주의 경향과 이어진 평화시위는 (미국 내에서) 한·미동맹의 수정을 요구해 온 사람들이 움직일 수 있는 기회를 제공했다. 지금 한·미동맹을 변화시키려는 계획은 표면적으로는 적은 지상군과 좀더 늘어난 해·공군력으로 전환하자는 것이지만, 만약 서울의 반미와 이에 반발하는 미국 내 반한(反韓)의 악순환이 계속된다면 결국 미국측 시각에서 한·미동맹을 격하하는 것으로까지 확대될 수도 있다.

노무현 당선자는 한국 역사에서 동맹을 잃은 대통령으로 기억되고 싶진 않을 것이다. 노 당선자와 그의 참모들도 한·미동맹에 관한 철저한 검토를 할 필요가 있다. 이를 통해 한국의 장기적 이익은 무엇이며, 부정적인 것이 아닌 긍정적인 의미의 한·미동맹에 관한 장기적 비전을 제시해야 할 것이다.

여기에는 민주주의와 시장경제, 대량살상무기 확산 방지, 반(反)테러, 인권, 법치주의, 군의 민간 통제, 세계 종교의 자유 등이 포함되어야 한다. 그리고 군사적 핵심에는 동북아 지역 안정에 필요한 세 가지 기준을 충족시키는 미군의 주둔이어야 한다. 주한미군은 군사적 잠재력(potential)과 이 지역의 과제에 빠르고 유연하게 대응할 수 있는 전개력(deployable)을 보유해야 하며, 주한미군이 감축되고 변화하더라도 한국에 대한 방위공약은 유지된다는 신뢰(credible)가 있어야 한다. 또 이런 요인들 못지않게 중요한 것이, 주한미군이 한국인들을 압도하고 우쭐대는 듯한 인상을 주지 않아야 할 것이다.

하지만 이 같은 장기적 차원의 연구가 현 상황을 오도해서는 안 된다. 한·미 양국은 이런 노력이 올바른 정치적 맥락에서 이뤄지는 것이며, 이를 잘못 해석하는 일이 결코 없도록 해야 할 것이다. 그렇지 않으면 한·미동맹은 특정사건들에 의해 압도되고 지배당하던 냉전시대의 잘못을 반복할 위험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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