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무현 대통령 당선자는 주한미군 문제와 관련해 솔직한 입장과 구상을 밝힐 때가 됐다. 엊그제 한 세미나에서 리온 러포트 주한미군 사령관이 “한국의 새 정부 등장으로 한·미동맹을 변화시킬 기회가 왔다. 한·미상호방위조약을 재검토할 필요가 있다”고 말한 것과 같은 류의 발언이 미국측에서 계속 등장하고 있기 때문이다.

올해로 50주년을 맞는 한·미상호방위조약을 시대의 변화와 기술 발전에 맞춰 강화하고 재조정할 필요가 있다고 하더라도 그 핵심은 방향의 문제다. 한·미 양측 모두 겉으로는 ‘발전적 재조정’을 이야기하고 있지만, 한·미 동맹을 강화하는 쪽의 발전인지, 아니면 그 반대인지 걱정스러운 대목이 한두 가지가 아니다.

‘전시 작전통제권’만 해도 그렇다. 노 당선자는 “막상 전쟁이 나면 국군에 대한 지휘권도 한국 대통령이 갖고 있지 않다”고 불만을 표시했지만, 우리 군 지휘부나 전문가들은 대북(對北) 정보의 90% 가량을 미국에 의존하는 현실을 지적하면서 ‘시기상조’라는 데 일치된 견해를 보이고 있다.

그리고 한국 방위에서 주한미군이 감당해 온 부분까지 한국군이 떠맡는 데 필요한 비용만 해도 연간 우리 국방예산을 2배로 증액시켜도 모자랄 뿐만 아니라, 미군의 정보능력과 상징적 가치까지 포함하면 그 경제적 가치는 일반 국민의 예상을 훨씬 뛰어넘는다.

‘대등한 관계’를 요구하며 미국에 대해 속시원하게 목소리를 높인 ‘자존심 값’치고는 그 비용이 너무 엄청난 것이다. 우리 국민들이 이 같은 상황을 직시하려면 한·미동맹과 주한미군의 가치에 관한 정부의 책임있는 설명이 있어야 할 것이다.

노 당선자는 엊그제 “나를 좌파로 모는 것은 오해이고, 한국민은 미군 주둔을 원한다”고 말했다. 진정 노 당선자가 자신을 바라보는 미국측의 우려를 불식시키려면 이젠 구체적 실천이 따라야 할 것이다. 특히 “자국 입장을 강화하기 위해 상대방을 흠집내지 말고, 한·미 간 이견이나 정책논쟁을 언론을 통해서 하기보다는 내밀하게 하라”는 미국측 인사의 지적을 유념할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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