安秉稷/서울대 교수·서양사학

지난 세기 분단의 비극과 통일의 기쁨을 모두 경험한 독일의 사례는 한국의 통일문제나 대북 정책의 논의에서 곧잘 비교의 대상이 된다. 특히 1960년대 말 빌리 브란트 총리의 집권 이후 동독에 대해 화해와 협력노선을 견지한 서독의 대 동독정책은 지난 5년 간 우리 정부가 추진한 대북 정책의 모델이 되었다. 김대중 대통령이 2000년 3월 대북 경제 지원의 뜻을 밝히는 외교무대로서 베를린을 선택한 것은 결코 우연이 아니다.

그럼에도 그 동안 ‘햇볕정책’으로 일컬었던 우리 정부의 대북 정책과 새로운 ‘동방정책’으로 1970년대 이래 서독 정부가 추진한 대 동독정책 사이에는 겉보기와 달리 실상에서는 상당한 괴리가 있다.

동독에 대한 서독의 경제적 지원을 보면 그렇다. 서독이 동독과의 관계를 개선하면서 많은 비용을 감수하며 동독을 경제적으로 지원한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구체적인 지원 내용과 방식은 햇볕정책에서 연상하는 것과는 사뭇 다르다.

한마디로 서독의 경우 지원의 주체와 대상은 정부가 아니라 개별 주민이었다. 예컨대 통일 전까지 동독에 대한 서독의 무상공여 가운데는 서독 주민이 소포, 송금, 탁송 혹은 직접 방문 등의 방법으로 동독의 가족과 친지에게 제공한 물품과 현금이 약 70%에 이른다.

반면 서독 정부가 동독 정부에 제공한 정부 차원의 지원은 20% 정도에 불과하고, 그 중에는 동독을 관통해 서베를린에 이르는 고속도로 통행료가 절반 이상을 차지한다. 고립된 섬처럼 동독 내 위치한 서베를린의 존재가 정부의 지원을 불가피하게 만든 요인이었다.

서독에서도 동독에 대한 경제적 지원을 둘러싸고 종종 논란이 있었으나, 지원의 필요성에 대해서는 사회적으로 광범위한 합의가 있었고, 지원의 규모도 지속적으로 늘어났다.

새로운 정책과 함께 동·서독 주민 사이에 상호 왕래가 증가하고, 동독 국경에서 비인간적인 탈주방지 조치가 완화되며, 동독 주민에게 서독 TV의 시청이 허용되는 등 분단시대 양독(兩獨) 주민의 삶에 새로운 변화가 나타났기 때문이다.

분단의 고통을 덜어주는 ‘작은 발걸음의 정치’라는 슬로건에 부합하는 가시적인 성과는 1980년대 초 여야간 정권교체에도 불구하고 동방정책의 기본 틀이 지속될 수 있었던 배경이다.

그럼에도 동방정책에 대한 평가가 후한 것만은 아니다. 통일 이후 독일에서는 역대 서독정부의 대 동독정책에 대한 재평가 작업이 진행되면서 동방정책의 노선과 운용에 대해 여러 가지 비판이 제기된 바 있다.

즉 서독은 1980년대 말 동독 정권이 예기치 않게 붕괴할 때까지 동독의 실상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했으며, 오히려 협력과 지원을 통해 독재정권을 안정시키고 연장하는 데 기여했다는 것이다. 뿐만 아니라 서독의 여야 정당 모두 선거를 위해 동독 정권과 막후 접촉과 밀약을 꺼리지 않았던 반면 동독 내 체제비판 세력에 대한 관심과 지원은 소홀했다는 것이다.

통일 이후 결과론의 시각을 반영한 이런 비판이 모두 다 정당한 것은 아니다. 하지만 동독의 체제변화보다 평화공존을 지향한 동방정책은 본질적으로 현상유지 정책이었으며, 그 점에서 ‘접근을 통한 변화’라는 구상과는 달리 ‘변화 없는 접근’에 머물렀다는 지적은 일리가 있다. 사실 분단을 극복하기 위해 분단을 수용해야 한다는 것이 동방정책의 근본적인 딜레마였다.

햇볕정책도 동반자가 될 수 없는 독재정권을 동반자로 삼을 수밖에 없다는 점에서 동방정책의 딜레마를 공유한다. 그러나 햇볕정책의 평가를 위해 그런 근본적인 한계까지 거론할 필요는 없다.

단지 동방정책의 가장 기본적인 취지, 즉 분단으로 인한 인간적 고통을 조금이라도 덜어주려는 노력을 상기하는 것으로 충분하다. 그동안 햇볕정책이 남북 이산가족의 슬픔과 한(恨)을 얼마나 덜어 주었으며, 독재와 빈곤에 시달리는 북한 주민의 삶을 얼마나 개선하였는가?

아직도 수많은 이산 가족이 애타게 상봉의 기회를 고대하고 있고, 이북에서는 신변의 위협을 무릅쓴 탈북자의 행렬이 끊이지 않으며, 특히 수백만에 이르는 어린이가 기아와 질병으로 생명이 위협 받는 상황이다. 동방정책의 최대 성과였던 인도적인 문제의 해결이 햇볕정책이라는 현란한 수사(修辭)에 어울리지 않는 음지의 상태로 방치된 것이다.

바로 그 점에서 햇볕정책의 일환이라는 남북 정상회담과 대북 비밀송금은 어떤 변명에도 치적(治積)에 대한 과욕과 공명심이 빚은 정치 해프닝과 스캔들에 불과하다는 생각을 지울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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