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영실적이나 투자계획에는 관심이 없고 투자자들이 온통 북핵(北核)과 주한 미군철수 문제에 대해 집중적으로 물어보는데 정말 갑갑하더군요.”

최근 투자설명회(IR)를 위해 미국을 다녀온 한 대기업 CEO(최고경영자)는 “해외 IR을 여러 번 해봤지만, 이번 경우는 당혹스럽다 못해 충격적이었다”고 털어놨다. 설명회에선 또 노무현(盧武鉉) 대통령 당선자의 경제 정책 방향이나 SK그룹에 대한 검찰 조사 같은 대답하기 곤란한 질문이 속출했다고 한다.

그는 “별 문제가 없을 것이라고 답하기는 했지만 외국에서 지금 한국을 저렇게 불안하게 바라보는구나 생각하니 진땀이 나더라”고 말했다.
지난주 4대그룹 계열의 한 전자업체가 유럽지역에서 개최한 투자설명회도 마찬가지였다.

담당 임원은 “한국 정세에 상대적으로 둔감한 유럽 투자가들조차 북핵(北核) 문제나 노 당선자의 정책에 대해 이것 저것 묻더라”며 “바깥에서는 한국을 아슬아슬하게 지켜보고 있는데, 유독 우리나라만 천하태평인 것 같다”고 말했다. 외국인들은 한국의 투자 여건과 경제 전망을 어둡게 보는데, 국내에서는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고 있다는 지적이다.

일부 외국인 투자자들은 한국 일각의 반미(反美) 정서에 대해 매우 냉소적인 반응을 보이고 있다. 더욱이 미국 행정부에 영향력을 미치는 월가(街)의 큰손들 사이에서는 “(한국이 계속 반미를 외친다면) 미군을 철수시키고 북한에 대해서도 원칙대로 대응해야 된다”는 목소리가 적지 않다고 재계 관계자들은 전하고 있다.

위기를 실제보다 부풀릴 이유는 없다. 하지만 무디스가 한국의 신용등급 전망을 두 단계 내리고 외국인 투자자들이 불안한 눈길로 뒷걸음 하는 상황이 위기가 아니면 무엇이 위기란 말인가. 외교든, 경제든 ‘안전 불감증’이 대형사고를 부를 수 있음을 잊어선 안 된다.
/金起弘·산업부기자 darma90@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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