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북경에서 일어난 귀순자 조명철(조명철)씨 납치사건은 현재까지 드러난 바로는 단순 형사사건일 가능성이 높다. 거기다 그가 피랍(피랍) 18시간 만에 다행히 탈출해 아무런 피해를 입지 않았지만, 만약 북한 공작원이 개입해 그를 납치했다면 사건은 전혀 다른 방향으로 흘러갔을 것이다. 예컨대 북측은 그를 몰래 북한에 끌고가 탈북자에 대한 응징의 본보기로 잔혹하게 처형하든가, 아니면 그가 남한으로 갔으나 북한보다 못하다는 것을 알고 다시 자진월북한 것처럼 조작해 선전에 이용했을 것이다.

94년 7월 김일성대학 교수로 있다가 탈북한 조씨는 안보측면에서 중요한 인물이다. 북한 최고 엘리트이자 고위관리의 아들이란 점 때문에 그는 탈북 후에도 북한 정보기관의 계속적인 주시의 대상이 되었을 것이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그의 북경 출장이 충분한 보안조치 없이 행해졌다는 것은 우리 관계당국의 탈북자 관리가 얼마나 허술한가를 단적으로 드러낸 것이다. 물론 직원 2명이 함께 갔기 때문에 마음을 놓았다고 할 수 있을지 모르나, 이들은 문제가 생기면 대처능력이 거의 없는 비전문가들이다.

더구나 북경은 대북안보가 가장 취약한 지역중 하나다. 그곳엔 북한 공작원들이 오래전부터 대규모로 활동하고 있으며 정보원들도 적지 않다. 북경뿐 아니라 연변조선족 자치주 등 중국 곳곳에 살고있는 조선족 동포들은 정서상 북한에 가까울 뿐 아니라, 남한사람에 대해 적대적인 감정을 가진 이들도 적지 않다. 그래서 조씨 같은 인물은 되도록 그쪽으로는 가지 않는 것이 바람직하며, 불가피한 사유가 있다면 그만한 안전조치를 반드시 취해야 한다. 그런데 대외경제정책연구원에 근무하는 조씨의 중국방문 목적이 대중(대중), 대북(대북) 경제교류와 관련한 기업조사 및 동북아 경제협력방안을 논의하기 위한 것이었다면 그 정도의 일 때문에 조씨가 반드시 갈 필요가 과연 있었는지 의문이다.

조씨사건 발생 후 우리 경찰의 태도도 석연치 않다. 경찰이 처음 용의자를 잡고도 풀어주었다가 뒤늦게 재수사에 나서는 등 ‘문제화’하지 않으려는 듯한 태도를 보인 것은 탈북자 관리의 허점이 드러나 사회적인 논란거리가 되는 것을 덮으려는 국정원 지시 때문이 아니냐는 의혹을 살 만하다. 우리는 탈북자들이 한국에 온 뒤 일정기간이 지나면 해외여행을 자유롭게 할 수 있기를 바란다. 그러나 그것은 어디까지나 신변 안전이 보장되는 상황에서 해야지, 그렇지 않은 상황에서 허용하는 것은 문제가 아닐 수 없다. 정보당국은 이번 사건을 계기로 탈북자들이 불편을 느끼지 않으면서도 효과적인 안전관리를 받을 수 있는 대책을 마련해야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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