李根植/서울시립대 교수·경제학

노무현 대통령 당선자는 지난 13일 북핵문제와 관련해 중요한 발언을 했다. 미국과 다를 것은 달라야 하고, 북한과의 전쟁 위기를 막아야 하며, 전쟁으로 다 죽는 것보다는 어려운 게 나으므로 경제에 어려움이 있더라도 굳은 결심을 해야 하며, 북한에 더 퍼주더라도 투자를 계속해야 한다고 말했다고 한다.

1968년 김신조 일당의 청와대 습격 기도사건과 푸에블로호사건, 1976년의 판문점 도끼사건, 1993년의 핵 위기 등 지금까지 6·25 이후에도 여러 번 위기가 있었던 탓에 우리 국민들은 위기에 만성이 되어 현재의 위기를 심각하게 느끼고 있지 못하고 있는 것 같다.

그러나 현재의 북핵 위기는 매우 심각하다고 생각된다. 미국은 북한의 핵 보유를 막기 위해 전쟁도 불사하겠다고 말하고 있으며, 북한은 이에 맞서 전 세계의 미군을 공격할 수 있는 능력을 보유하고 있다고 호언하고 있다. 확률은 매우 낮으나 이 땅에서 끔찍한 전쟁이 다시 발발할 수도 있는 상태라고 보아야 할 것이다.

노 당선자가 한 말 중에서 미국과 우리의 입장이 다르다는 말은 당연하다. 미국의 입장에서 북한은 자신들이 고려하는 전 세계의 한 부분에 불과하며, 전쟁이 발생하더라도 미국은 전쟁의 현장에서 멀리 떨어져 있기 때문이다.

전쟁을 막기 위해 경제에 어려움이 있더라도 굳은 결심을 해야 한다는 노 당선자의 말도 옳다. 수백만의 인명이 죽고 수많은 도시들이 재로 변하는 전쟁에 비하면 실업이나 물가는 사소한 문제이기 때문이다. 북핵문제를 평화적으로 해결해야 된다는 것에 대해서도 누구나 동의한다.

그러나 북한에 더 퍼 주더라도 북한에 투자를 계속해야 한다는 주장은 논란의 여지가 있다. 굶주리고 있는 북한 동포를 위해 식량과 생필품을 현물로 원조하는 것은 같은 동포로서 우리의 의무이다. 그러나 최근 폭로된 바와 같이 수억달러를 현금으로 비밀리에 북한에 주는 것이 과연 옳은 것인지는 의문이다.

북한의 핵 개발에 이 돈이 사용될 수 있기 때문이다. 달러를 벌 길이 거의 없는 북한은 남북협력에 협조하는 대가로 남한에 달러를 요구해 왔고 남북 화해와 협력을 위해 이에 응해 왔음을 김대중 대통령도 14일 기자회견에서 인정했다.

파국에 이른 경제와 미국의 위협에 맞서 정권을 유지해야 하는 북한 정권에 핵 보유는 거부하기 힘든 유혹일 것이며, 미국은 북한의 핵 보유를 결코 좌시하지 않을 것이다.

김 대통령과 노 당선자는 북핵문제에서 우리가 주도권을 쥐어야 한다고 말하지만 현실에서 칼자루를 쥔 것은 미국과 북한이고 우리는 칼날을 쥐고 있을 뿐이다. 더욱이 현재 워싱턴을 장악하고 있는 것은 전쟁을 불사하는 강경파들이며, 북한의 집권층도 21세기에 보기 힘든 집단이다.

노 당선자는 매우 어려운 시기에 대통령으로 취임하게 됐다. 경기 불황, 현대의 불법적 대북 송금문제, 미국의 이라크 침공 임박으로 인한 세계 평화의 동요와 세계경제의 불안 등 당면한 난제가 한 둘이 아니다. 실로 국난의 시기이다. 그러나 가장 시급한 문제는 북핵문제이다. 우리 국민들의 사활이 걸려 있기 때문이다.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가장 먼저 해야 할 것은 대북정책에 관한 국론을 정립하는 것이다. 그간 김대중 정부의 포용정책은 이번의 현대 대북 송금사건을 계기로 정확하게 재평가해야 한다. 현재와 같이 국론이 양분된 상태에서 미국의 압력과 북한의 벼랑끝 전술에 대응하여 북핵문제를 평화적으로 해결할 수는 없을 것이다.

현재 우리나라에는 북한문제와 관련해 충분한 정보도 진정한 토론도 국민적 합의도 없이 서로를 비난하는 양극의 견해만 존재하는 것 같다. 먼저 공개적인 국민 토론을 많이 열어 정보를 공개하고 합의를 도출하자.

국익을 지키고 전쟁을 방지하겠다는 노 당선자의 결의는 환영하지만, 국민 대다수로부터 진정한 지지를 얻지 못하면 아무 힘을 쓸 수 없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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