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K그룹에 대한 검찰의 전격적인 수사 조치와 관련해 우리는 사안 자체의 중대성보다는 그 이례성(異例性)에 더 주목하지 않을 수 없다. 강한 재벌개혁 의지를 내비치고 있는 새 정부 출범이 임박한 시점인 데다, 국내 3위의 대기업 집단에 대해 검찰이 전례없이 신속하고 단호한 자세를 보이고 있다는 점에서 범상치 않은 기류를 느끼게 한다.

검찰이 밝히고 있는 SK그룹의 혐의는 크게 두가지다. 최태원 회장이 그룹 지배권을 강화하는데 필요한 자금확보를 위해 자기 소유의 워커힐 호텔 지분을 적정가보다 높게 계열사에 매각했다는 것, SK증권의 해외투자 손실을 부당하게 계열사들에 떠넘겼다는 것이다.

이런 혐의의 위법성 여부는 최종적으로 법원의 판단에 맡길 일이지만, 불법 혐의를 인지한 검찰이 수사에 착수하는 것 자체는 검찰의 고유업무인 만큼 그에 대해선 뭐라 언급할 바가 아닐 것이다. 그러나 명백히 불법성이 드러난 현대그룹의 대북(對北) 비밀송금에 대해서는 정치권의 눈치만 살피던 검찰이기에 SK에 대한 거침없는 태도가 오히려 이상하고 부자연스러워 보인다.

검찰이 제기한 혐의가 SK 그룹 사무실에 대한 압수수색과 고위 임원 17명의 출국금지를 서둘러야 할 정도로 긴급하고 중대한 사안인지도 의문이다. 공정거래위원회가 먼저 조사한 뒤 검찰에 고발하면 수사에 착수하는 통상적인 순서를 밟지 못할 이유가 뭐란 말인가?

새 정부측과 검찰은 극구 부인하고 있지만 이런 예외성이 재계와 시장에서 ‘현대문제의 국면(局面)전환용’이라든가 ‘새 정부의 재벌 길들이기’ 같은 설왕설래를 낳게 하고 있다.

대기업의 편법상속이나 부당 내부거래 같은 잘못된 관행은 물론 바로잡아야 한다. 그러나 검찰권 동원은 자칫 전반적인 기업 마인드를 위축시키고 시장을 불안하게 하는 부작용을 낳을 수 있다는 것도 함께 유념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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