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의 아들 김성민씨는 탈북자동지회 회보 '탈북자들' 2월호에 기고한 글에서 "아버지(김순석)는 71년 12월 이후 수정주의자 등으로 몰려 작품활동을 하지 못한채 1974년 12월 24일 쉰 다섯의 나이로 하늘나라에 승천하셨다"고 전했다.
초대 작가동맹 시 분과위원장, 김일성종합대학의 첫 창작지도원 등을 지낸 김순석 시인의 말년 행적과 사망일자가 구체적으로 확인된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김씨는 아버지의 말년 행적에 대해 "작가동맹 정기회의도 진단서로 대치하는가 하면 집앞 대동강에서는 밤 낚시질을, 낮에는 시골의 호숫가로 낚시질을 다녔을 뿐 시 한편 지어내지 못했다"고 소개했다.
이에대해 한 탈북자는 "김순석이 71년 이후 작품활동을 하지 못했던 것은 김일성주석- 김정일 위원장 찬양물 창작에 제대로 적응을 하지 못해 문단에서도 주도권을 잃었기 때문"이라고 전했다.
김 씨는 "김정일이 작가들에게 보내는 선물을 받지 못한 71년 12월30일 이후 아버지의 권위는 하루 아침에 무너져 시 한편 지어내지 못했으며 돌아가신 몇년 후 박세영 시인으로부터 아버지가 자강도로 추방됐었다는 이야기를 들었다"고 회고했다.
김 시인은 '황금의 땅'을 비롯한 네권의 시집과 '빨찌산의 노래' 등 3000여 편의 시를 남겼다고 김 씨는 소개했다.
한편 김 시인의 대표작인 '빨찌산의 노래'와 '어랑천' 등은 북한에서 "무장을 하고 투쟁에 나선 남한 혁명가들의 투지와 인민정권 건설에 대한 혁명적 지향을 형상화 한 작품"이라는 평가를 받고 있다./연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