랄프 코사/ 미국 CSIS 태평양 포럼(하와이) 회장

북한 핵 위기와 관련해 오는 25일 취임하는 한국의 새 대통령이 하게 될 첫 공식 언급을 세계는 대단히 주의깊게 들을 것이다. 그의 말은 향후 수년간 전개될 남북 관계와 한·미 관계의 기조를 설정할 것이다.

노무현 차기 대통령은 취임식에서 한국의 입장이 무엇인지를 평양과 워싱턴에 대해 분명히 밝히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 북한은 현 대치 국면에서 남북이 함께 미국에 맞서야 한다는 주장을 계속하고 있다. 심지어 미국에 대해 선제공격 위협까지 했다.

지난 50년간 미국은 ‘한국에 대한 공격은 곧 미국에 대한 공격’이라고 말했다. 노 차기 대통령은 그 역(逆) 또한 사실이라는 점을 분명히 말해야 한다. 여기서 중립은 선택 방안이 아니다.
북한은 한·미 사이에 쐐기를 박으려 한다. 그러나 그것이 우리 양국의 결의를 더욱 강화시킨다는 점을 북한이 깨달아야만, 북한은 지금의 대결적 행태를 바꿀 생각을 하게 될 것이다.

북한의 행동이 남한 국민들로서는 받아들일 수 없는 것이라는 점을 반드시 북한에 말해야 한다. 북한은 미국과 1994년에 맺은 제네바 합의와 다자(多者)조약인 핵확산금지조약, 국제원자력기구(IAEA)와의 합의인 핵안전협정 등만 위반하고 있는 것이 아니다. 1992년에 남한과 합의한 남북 기본협정과 한반도 비핵화 공동선언도 위반하고 있다. 특히 후자는 북한의 ‘영원한 주석’ 김일성이 남한과 했던 약속이다.

노 차기 대통령은 또 이 문제가 순전히 미·북 간 양자(兩者) 문제라는 북한의 주장을 분명히 배격해야 할 것이다. 북한은 IAEA의 사찰 요원들을 추방했을 때 이미 이것을 국제 문제로 만들었다. 그리고 노 차기 대통령이 올바로 지적한 대로, 이 위기는 남한과 북한에 있는 한국인 전체의 안보에 직접 영향을 미친다.

궁극적으로는 미·북 사이의 직접 대화가 아마도 요즘 제안되는 ‘5+5(안보리 상임이사국 5개국과 한국·북한·일본 등 관련국 5국)’의 틀 속에서라도 이뤄져야 한다는 데는 필자도 동의한다.

하지만 노 차기 대통령은 미·북 불가침조약이라는 북한 요구를 강력히 거절해야 한다. 불가침조약은 평화만들기 과정에서 한국을 배제함으로써 한국의 안보 이익을 잠식할 것이며, 바로 그 때문에 모든 전임 한국 대통령들과 미국 대통령들도 현명하게 이를 거절했었다.

1996년 4월 당시 김영삼 대통령과 클린턴 대통령이 “평화 문제에 관한 미·북 사이의 별도 협상은 생각할 수 없다”고 선언했던 것을 기억하는가?

노 차기 대통령은 또 대북 대응 방안들을 지레 배제하지 않기를 바란다. ‘대북 제재나 무력 사용은 전적으로 받아들일 수 없다’고 말하는 것은 결과적으로 북한의 요구에 완전히 굴복하든가, 아니면 북한의 핵무기 보유를 기정사실로 받아들이든가 하는 길밖에 없게 되는데, 그 어느 것도 받아들일 수 없는 일이다.

현 시점에서 군사적 행동이 바람직하다는 말이 아니다. 북한에 대해 핵 활동을 중단하라고 요구하면서 동시에 북한이 겁낼 것은 아무 것도 없다는 확신을 심어주는 방법으로는 김정일에게 지금의 위기를 종식시키도록 설득하기가 대단히 어려울 것이다.

모든 선택 방안이 책상 위에 놓여져 있어야 한다. 윌리엄 페리 전 국방장관이 최근 다시 상기시켰듯이 “가능한 해결책의 요소들 가운데는, 비록 전쟁의 위험을 무릅쓰더라도 핵위협을 반드시 제거하겠다”는 결의의 확실성이 반드시 포함돼야 한다.
북한은 자신들의 정책이 서울과 워싱턴 사이에 쐐기를 박는다고 생각하는 한, 위기 고조 게임을 계속할 것이다.

김정일에 대해서는 미국·일본·중국과 유엔 안전보장이사회를 포함한 다른 국제공동체뿐만 아니라 바로 한국이 이런 이야기를 해줄 필요가 있다. 즉 김정일이 남한과의 약속(한반도 비핵화) 준수와 국제공동체와의 협력을 계속 거부한다는 것은 받아들일 수 없으며, 남한을 포함한 전체 국제사회와 북한의 향후 관계를 심각한 위험에 빠뜨리게 될 것이라는 점이다.

그럴 때만 북한은 지금의 벼랑 끝 게임을 중단하고 진지한 협상에 임하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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