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0년 6월, 2억달러 대북 송금 당시 외환은행장이던 김경림(金璟林) 외환은행 이사회 의장은 요즘 사무실을 자주 비운다. 당시 은행에서 이뤄진 2억달러의 환전·송금 과정을 묻는 기자들을 피하려 아예 출근을 하지 않는 때도 있다.

하지만 그가 모든 사안에 함구하는 것은 아니다. 당시 국정원과 송금에 협의·협조했다는 의혹에 대해선 답변의 진위 여부를 떠나 『그런 일이 없다』고 말한다. 2억달러의 송금 과정에 대해서만 입을 열지 않는 것이다.

이런 행태는 대부분 임직원들이 마찬가지다. 캥기는 것이 있어서일까? 그럴 수도 있지만 은행측 주장은 이렇다. 『금융회사인 우리가 말하면 금융실명제법 위반에 해당돼 처벌을 받는다』는 것이다. 그래서 사건과 관련이 있는 은행 직원들에게 함구령을 내렸다고 은행측은 말한다.

외환은행이 주장하는 「해법」은 두 가지다.
먼저 『말을 해도 법적 처벌을 받지 않는 고객이 속 시원히 말해달라』는 것이다. 고객이란 외환은행을 통해 2억달러를 송금하거나 편의를 제공한 정부와 현대상선 둘 다 포함된다. 언제, 누구 명의로, 북한의 누구에게 송금했는지 서로 핑퐁치지 말고 당사자들이 말하라는 얘기다.

두 번째 『정 우리가 말을 해야 한다면 정부가 우리를 실명제로부터 자유롭게 해달라』는 것이다. 방법은 하나다. 정식으로 수사를 시작하면 된다. 그러면 적법 절차를 거친 수사기관에 알고 있는 금융거래 정보를 남김없이 제공하겠다는 얘기다. 김 전 행장 역시 『실명제 굴레를 벗어나면 말 못할 게 없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정부는 스스로 진상을 밝히는 것은 고사하고, 검찰의 수사조차 막고 있다는 느낌이다. 정부가 저지른 일을 정부가 온갖 방법을 다해 진상을 은폐하고 있는 이런 황당한 상황이 도대체 언제까지 지속될 것인가.
/ 鮮于鉦·경제부기자 jsunwoo@chso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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