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의 웬만한 북한 전문가들도 고개를 설레설레 흔드는 것이 북한 ‘김정일 가문’에 대한 질문이다. 우선 그의 부인이 몇 명이고 누가 본처인지부터 확실하지 않다. 그러니 아들 딸이 몇 명인지도 파악하기 어렵다.

‘위대한 령도자’의 집안 이야기는 공식 선전물에 나오는 내용 말고는 북한주민들이 절대 입에 올려서는 안되는 극비사항이다. 성혜림이 김정일의 부인이었다고 발설했다가 평양에서 지방으로 쫓겨간 뒤 결국 탈북한 핵심계층 출신도 있다.

▶‘지도자’에 관한 모든 것이 비밀로 취급되는 북한에서 그의 가족관계가 공개되지 않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이다. 게다가 북한의 ‘로열 패밀리(왕가)’를 철저하게 베일속에 가려놓는 것은 가계우상화를 위해서도 필요할 것이다. 지도자의 가족들까지 신비한 인물로 만들기 위해서는 사실대로 공개할 수 없기 때문이다. 로열 패밀리 중 누군가에 대한 우상화 작업이 시작되면 이는 북한 정치구도에서 중요한 의미를 갖기 시작한다. 김정일 후계작업 때도 그랬다.

▶김정일이 후계자로 등장하면서 그의 어머니 김정숙(1949년 사망)이 ‘항일의 여성 영웅’ ‘조선의 어머니’ 등으로 우상화되기 시작했다. 혈통의 우상화가 선행된 것이다. 김정일이 공식적으로 김일성 후계자로 내정된 것은 1974년 2월 노동당 정치위원(현재의 정치국원)이 되면서였다. 실제로는 그보다 조금 앞선 73년 9월 노동당 비서가 되면서 후계구도를 확립했다. 이때 김일성의 나이는 만 61세, 김정일은 31세였다. 지금 김정일도 만 61세로 후계자를 생각할 때가 됐다는 관측이 나오고 있다.

▶김정일에게는 성인이 된 아들이 두 명이 있다. 성혜림의 아들 정남(正男)과 고영희의 아들 정철(正哲)이다. 김정남(33)은 2년 전 일본 밀입국 사건으로 국제적 망신을 사면서 유명해졌지만 김정철(22)은 아직 외부에 잘 알려져 있지 않다.

그런데 북한당국이 최근 김정철의 어머니 고영희로 여겨지는 ‘존경하는 어머님’에 대한 우상화 작업을 군부에서부터 시작한 것으로 확인됐다. 이것이 차남을 자신의 후계자로 만들기 위한 김정일의 사전 정지작업이라는 해석이 유력하다.

▶북한에서 3대에 걸친 부자 권력계승이 본격 시도될지, 또 그것이 성공할지는 두고 볼 일이지만 김정일로서는 다른 권력이양 방법을 찾기 어려워 보인다. “정말 어처구니 없어서…”라는 황장엽씨의 개탄에 달리 보탤 말이 없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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