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무현 대통령 당선자는 이제 대북 비밀송금 사건의 처리 방향에 대해 스스로 적극적인 선택을 하고 결단을 내려야 한다.

지금처럼 김대중 정권과 야당의 중간쯤에 선 듯, 모든 책임과 결정을 국회에 미뤄놓는 것은 취임을 보름도 채 남겨놓지 않은 차기 대통령으로서 취할 책임있는 자세라고 할 수 없다.

노 당선자의 선택은 새 정부가 김대중 정권과 어떤 인과(因果)적 관계를 갖게 될 것인지를 결정하는 중요한 시금석이 될 것이다.

만약 그가 대북 비밀송금을 옹호하는 입장에 선다면 노무현 정권은 출발부터 태생적 한계를 벗지 못한 채 김대중 정권의 부(否)의 유산을 고스란히 안게 될 것이다. 그것은 새 정부가 초반부터 깊은 수렁에 빠져드는 것을 의미한다.

노 당선자가 비밀송금 사건을 원칙과 법에 따라 단호하게 처리해야 할 불가피성은 그가 김대중 정부의 대북정책을 승계하는 입장에 있기 때문에 더욱 커진다고 할 수 있다. 자칫하면 김대중 정부의 불투명성과 의혹마저 그대로 이어받는 것 아니냐는 국민들의 불안을 증폭시킬 수 있는 것이다.

이를 불식시키고 남북관계의 정상적 질서를 확립하기 위해서라도 이번 사건에 대한 노 당선자의 분명하고 직접적인 입장표명이 더이상 늦추어져서는 곤란하다. 노 당선자가 엉거주춤하고 있으면 북한당국마저 그의 대북관(觀)을 자신들이 편리한 대로 해석할 소지가 없지 않다.

노 당선자의 정치고문인 김원기 의원이 엊그제 비밀송금 문제에 대해 원론적인 수준에서 ‘성역없는 사법처리’를 언급한 것은 김대중 정부와의 단절 가능성을 시사한 신호로 여겨진다.

이제 노 당선자가 직접 나서 어떤 방법으로든 김대중 정권의 책임을 추궁하고 진실을 밝혀내려는 적극적인 자세를 취해야 한다. 그러지 못한다면 그가 이끌 새 정부는 김대중 정권의 아류(亞流)라는 지적을 피하기 어려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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